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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살찐 돼지인가  
    
살찐 돼지 론(論)이 이곳저곳에서 들려 왔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나 돌았던 유행어였습니다. 일본의 경제력은 비록 미국 다음의 세계 제2 위국이었지만 머지않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낙관론마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고속 성장의 순풍을 타고 무역 흑자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대도시의 부동산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습니다. 나라 안에 외화가 넘쳐나자 일본인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를 누비며 대형 건물과 고(古) 미술품, 명문 골프 코스 등을 마구잡이로 사들였습니다. 동경(東京)의 중심가에 있는 긴자(銀座)의 땅을 몽땅 팔면 미국 전토를 사고도 남을 것이라는 거창한 계산도 나돌았습니다.

그러나 이 살찐 돼지 론의 경고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 할 때까지 일본사회에 잘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살찐 돼지는 자신의 체중에 눌려 당연히 뒤뚱거리며 게을러졌어야 했는데도 일본의 살찐 돼지는 여전히 부지런하고 경제상황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 나갔습니다. 일본 경제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독차지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교만해 지고 독선의 늪에 빠져 들었습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질 때까지의 상황은 그랬습니다.

거품 붕괴와 함께 시작된 일본의 불황은 지금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언제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올지 예견이 불가능 하다 합니다. 그 부지런 했던 세대는 노령화해서 경제 일선에서 밀려 나 있고 새 세대는 살찐 돼지의 게으름 병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세평입니다. 일본의 젊은 층에는 캥거루 족(族)으로 불리는 게으른 비만아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합니다. 캥거루족은 저 출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가정에서 한 아이만을 출산하고 이 아이는 엄마의 배 주머니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의욕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성장한 이후에도 결혼을 한다거나 취직을 해서 경쟁사회에 진입할 생각은 없고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평생을 안일하게 살아가려는 세대라 합니다. 이들에게 창의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최근 스위스의 IMD가 세계 58개 국가를 대상으로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룰 보면 일본이 지금 마나 살찐 돼지 병에 심하게 걸려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2008년 17위에서 올해 27위로 추락, 한국•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나 태국의 순위 보다 뒤로 밀려났습니다.

일본은 지난주일 새 총리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50여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하토야마 정권은 9개월의 단명 내각으로 끝났고 지난 2006년 이후 다섯 번째의 새 총리가 취임한다는 소식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초 단명 내각이 회전문을 통해 들락날락 하는 현상 역시 살찐 돼지의 뒤뚱거리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전국 규모 지방선거가 지난 6월 2일에 실시되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제일야당 민주당의 대승과 집권당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는 대체로 집권당이 패배하는 게 관례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예상을 뒤엎은 한나라당의 대패였습니다.

“이념을 앞세우는 진보세력은 내부 분열로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공식이 꽤 오래전부터 정립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 단일화 돌풍을 일으키며 내부 분열의 병을 극복했고 한나라당은 야당을 압도한다는 불확실한 여론조사 결과를 과신, 당의 고질인 게으름과 교만으로 패배를 자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나라당을 흔히 웰빙당으로 지칭해 왔습니다만 이 병은 당초에 살찐 돼지 병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방 여론과는 동 떨어진 낙하산 공천으로 전통적인 여당 표밭에서 패배를 안아야 했고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고조된 국민 일반의 안보 불안을 야당이 역 이용해서 <여당=전쟁세력>으로 몰아 부치는 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심한 작태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도 일본의 골칫거리인 캥거루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확인되었습니다. 일본의 캥거루족은 자립의욕을 상실한 살찐 돼지 군(群)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국의 캥거루족은 당연히 분노를 느껴야 할 일 앞에서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살찐 돼지의 감성 퇴화의 특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부산에 있는 어떤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한 미국인 교수가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 북한이란 사실이 발표된 직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의 재학생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전사했는데도 교우를 잃은 그 대학의 대학생들이 분노를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동. 서독이 분열되어 있을 때에 서독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는데 당시의 서독 대학생들은 지금의 한국 대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산의 그 대학생들만이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감성 퇴화 병에 걸린 게 아니었습니다. 천안함이 바다 깊숙이 침몰되었을 때에 한국의 젊은 세대는 북한 어뢰에 의한 격침 설보다 함정의 좌초 설 또는 내부사고 설 쪽의 결론을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합니다. 어뢰에 의해 격침되었다는 민군 합동 조사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북한의 침략행위에 대해 분노를 느끼기보다 북한으로 하여금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한 한국 정부가 더 비판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기 까지 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이른바 퍼주기를 중단한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이런 불상사를 자초했다는 시각에 서 있는 한 한국의 신세대는 북한에 대해 분노를 느낄 감성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나라의 안전문제에 대한 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이처럼 현격한데도 한국의 정부와 여당은 전국 규모의 선거를 치르면서 제대로 전략을 세우는데 철저히 게을렀습니다. 선거 직전의 여론 조사 에 나타난 50% 대의 대통령 지지도와 40% 대의 한나라당 지지도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만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마침 서울에 체재하고 있었기에 우연히 만난 한나라당 소속 의원에게 여론 조사를 너무 믿지 말라고 충고 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살찐 돼지의 헛배를 두드리는데 쓴 말이 귀에 들릴 리가 없었던 게지요.

MB정부의 후반기는 된 서리에 시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군살도 빠지겠지요. 살찐 돼지를 졸업하지 못하면 2년 뒤에 정권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도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뒤뚱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