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1671 추천 수 13 댓글 0
한국은 한번 죽어야 산다!


정치판은 개판이고, 종교는 썩어 있고, 지식인은 죽어 있고, 교육은 무너지고, 변절과 배신과 반역이 난무하고, 일반 사회는 물론 정부 신경망 구석구석까지 간첩이 득실거리는 나라,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혼돈의 시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崔應杓(在美)    



나는 노무현 정권 시절 “대한민국,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는 대놓고 김정일을 좇아가던 참담한 때였으니까 그랬지만, 보수정부라는 이명박 시대에 와서 또 같은 제목의 글을 쓰게 되니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그 때 나는, 비록 나라는 빼앗겼더라도 민족혼만은 빼앗길 수 없다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라고 울부짖던 이상화 시인의 민족사랑 정신을 생각하며 썩어가는 민족혼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과 6.2지방 선거 참패에서도 배우고 느낀 것이 없는 이 넋 빠진 국민에게 과연 봄이 찾아올 것인지, 이상화 시인에게 죄송스럽기만 하다. 천안함과 6.2지방선가 깨우쳐 준 것은 대한민국엔 야당을 가장한 친북한당(親北韓黨)과 민주와 진보와 민족으로 포장된 김정일 세력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나라는 온통 월드컵 열기로 중화상(重火傷)을 입을 지경이다. 월드컵 승리를 염원하며 함성을 지르고 열을 뿜어내는 것 자체는 박수를 보내야할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고 국민의 혼을 하나로 묶어 세계에 대한민국의 힘을 드높이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다만 온 산하(山河)를 뒤 덮은 태극기 물결 속에 태극기의 의미가 얼마나 묻어 있고, 목이 터지라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그 함성 속에 나라 사랑의 열정(熱情)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그것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천안함이 폭침되고 46명의 동년배 장병이 목숨을 잃고 국가안보에 큰 위기가 온 절박한 상황인데도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외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기가수의 콘서트나 인기연예인 출연행사에는 수 천 명이 운집해서 괴성을 지르며 땀을 빼도 국가안보를 위한 행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김정일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는 젊은이들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이것이 어찌 젊은이들만의 일그러진 현상이겠는가. 분에 넘치는 자유와 풍요에 병든 국민정신의 총체적인 위기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 열광에 앞서 천안함과 함께 목숨을 잃은 젊은 영령들 앞에 머리 숙여 묵념하는 엄숙하고 성숙된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자세를 볼 수 있었다면, 거기에서 대한민국의 희망과 꿈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절망으로 남는다.

  

김정일을 위한 촛불은 들어도 정작 대한민국을 위해 촛불을 드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골프채 메고 골프관광을 즐기는 웰빙족은 있어도 정의를 위해 시청광장을 찾는 시민의 양심은 없다. 친북 좌파단체에게 돈을 내는 기업은 있어도 보수우파 단체에게 기부하는 기업은 없다. 정부나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시청광장을 점령한 촛불세력은 돈이 넘쳐나 흥청망청 이지만 대한민국 지킴이의 시민단체는 가난에 찌들어 있다. 김정일 세력이 거짓을 가지고 으름장을 놓으면 정부나 기업은 여전히 한발 물러서 머리를 숙이지만, 대한민국 세력은 진실을 가지고 말하는데도 고개를 저으며 법을 앞세워 거절하기 일쑤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온 세계가 천안함 테러를 규탄하고 미국의회를 비롯해 유럽연합 까지도 김정일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정의와 양심의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대한민국 국회는 없다. 제2의 6.25와 같은 침략을 당하고도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한번은 죽어야 산다.

  

노무현이 선거에서 재미 보기 위해 벌인 사기극에 박근혜가 박수치며 거든 세종 시 문제가 6월 22일 국회 국토위에서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역시 박근혜가 가로막고 나선 결과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논리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죽은 都市”를 만들 것이냐 “산 都市”를 만들 것이냐, 한 집안을 하나로 만들 것이냐 둘로 쪼갤 것이냐의 문제 아닌가. 죽은 도시를 만들면 도시뿐 아니라 시민전체가 같이 죽을 것이고, 한 집안을 둘로 쪼개면 집안 자체가 망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박근혜는 제2의 노무현 효과의 미련에 갇혀 죽은 도시를 만들고 집안을 둘로 쪼개자는 것이다. 원칙주의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장난치고는 정말 고약한 장난 아닌가. 노무현 효과, 글쎄 그 사기극이 다음 대선에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천안함 폭침이라는 국가차원의 안보위기가 온 나라를 뒤 흔들 때 원칙주의자 박근혜는 어디 있었는가. 그리고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친 박(親朴) 나리들은 다 어디 있었는가. 그래서 박근혜의 평양 나들이에 문제 있다고 보는 것이고,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평양 나들이의 의혹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 시 문제,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청계천 사업을 위해 직접 천 번이 넘게 주변 상인들을 만나 설득작업을 벌인 서울시장 이명박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 이명박은 왜 세종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그런 열정을 쏟지 않았는가.

  

진정 세종 시 수정안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확신아래 추진한 국가정책이라면 대통령과 정부 전체가 진정성을 가지고 반상회 하듯 지접 국민설득작업에 나섰다면, 그 열정과 성의에 감동해서라도 충청도민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박수를 모냈을 것이다.

  

시장 얼굴을 가지고는 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 체면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래서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갔다고들 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 내야한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열정이 없었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을 버린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조국, 정말 실망이다. 정치판은 개판이고, 종교는 썩어 있고, 지식인은 죽어 있고, 교육은 무너지고, 변절과 배신과 반역이 난무하고, 일반 사회는 물론 정부 신경망 구석구석까지 간첩이 득실거리는 나라,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혼돈의 시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정신은 불의를 제거하고, 노예의 멍에를 지고 고통 받는 눌린 자와 가난한 자들을 자유케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조용기 목사는 통일 후에, “남한의 교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는 질문에 대비해서 평양에 심장병원을 건설한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 사 한 말이다.

  

그렇다면, 통일 뒤에 북한 주민들이 “다 죽어가는 김정일을 살려 주어 우리의 고통이 더 처참했고, 더 오래 고통을 당했다”고 원망하며 “우리의 고통의 대가를 어떻게 보상 하겠느냐”고 항변한다면 그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정신은 그런 악마와 거래하고 가난하고 눌린 자를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콘은 “그리스도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해방을 위한 활동이며, 그 활동은 피압박자를 향한 것”이라고 했다. 교인들이 낸 헌금은 그런데 쓰라는 것이 아니다. 평양의 심장병원은 김정일과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가. 하나님은 눌린 자의 하나님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부조리(不條理)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미래는 어둡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뒤처리는 실망을 넘어 굴욕이다. 1보 전진, 2보 후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대북 삐라, 대북 방송, 전광판의 대북 심리전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진짜 이명박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고, 그 간첩과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해, 민족공조를 내세우며 반미를 외치고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극성맞은 데모를 주도하며 대중지지기반을 넓혀 나간 그 선동주의자들에 의해 망했다”는 이대용 장군의 증언을 기억 하는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자. 패망직전의 월남과 무엇이 다른가. 그 막강한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도 월남은 공산화가 되었다. 한국의 경제력만 들먹일 때가 아니다. 정신, 열정, 의지의 문제다. 지금처럼 썩어있는 국민정신으로 악의 극치 김정일 세력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보는가.

  

천안함 폭침을 당하고도 된장과 똥을 못 가리는 얼빠진 정치인들, 값싼 감상주의와 민족을 내세우며 작문(作文) 짓기나 해대는 배부른 종교인들, 있는 진실 그대로를 보지 않고 덧칠해서 왼쪽 눈으로만 보는 사팔뜨기 먹물들이 행세하는 현실 앞에 정의와 진실과 양삼이 설 자리는 없다. 이래서 대한민국, 한번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나 조국을 비난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반역기질에 찌든 고약한 정치인, 언론인, 학자, 비평가 들은 있다. 하지만 한국의 반역세력은 죄질이 더 고약하다. 그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 인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이 주는 온갖 혜택은 다 누리면서 말이다.

  

그들이 반역을 하는 것도 자유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저들이 조국이라고 믿는 김정일의 범죄 집단 사회에서라면 공개 총살감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반역을 한다면 구제 불능이다.

  

이제 2012년을 고민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2년 반, 짧다면 짧고 길다 면 길다. 이순신 정신으로 계산하면 충분한 시간이다. 제2의 이명박을 다시 만난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제 3의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김정일이 주적(主敵)이라는 확고한 국가관(國家觀)과 도덕성 그리고 신뢰성의 지도자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레이건 대통령처럼 당당하게 惡을 惡이라고 부르는 그런 지도자 말이다.

  

분명 하늘은 그런 지도자를 보내 주리라 믿는다. 하늘은 정의롭고 정직하니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6.25 희생자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2010. 6. 25.

최 응 표 (뉴욕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