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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愁 / 鄭芝溶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랴.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랴.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랴.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조선지광> 65호, 1927. 3>

<출처: 정지용전집, 1.詩. 민음사:1988> 

 

 

(시에 대해)

정지용이 일본에 유학갈 때 고향을 그리며 쓴 시로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하였다.

《향수》는 감각적, 회화적, 향토적인 언어 구사를 통해 인간의 공통된 정서인 향수를 한가로운 고향의 정경을 통하여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이다.

특히 감각화된 이미지들과 아름다운 우리 말 시어들이 이 시의 서정적 승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난 고향의 풍경과 삶의 모습은 개인의 체험에서 벗어나 민족의 보편적 정서에 닿아 있음으로써 공통적인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인간에게 존재의 원천이자 삶의 안식처인 고향이라는 대상을 독특한 감각과 향토적 서정을 바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각 연에서는 감각적 언어 구사를 통해 고향의 시각적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시적 자아와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하여 고향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지즐대는" "해설피" "풀섶" "함초롬" 등의 시어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집착했던 정지용의 언어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베개" 등의 토속적인 소재들이 참신한 비유를 통해 감각적으로 제시되면서 고향의 모습을 정겹고 아늑한 것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각 연은 "∼던 곳"으로 끝나 이미지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고, 각 연의 후렴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는 순환리듬의 전형을 보여주며, 각 연을 연결해 주는 고리로서 시에 훌륭한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후렴구의 반복은 시각적인 자극과 아울러 청각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원형적 고향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반복하게 한다.

"∼ㄹ리야"와 같은 부드럽게 다듬어진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이 해설에서 인용하는 싯귀는 현대 표준어로 바꾼 말이다.>

 

(시인에 대해)

아호는 지용(池龍)이다.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

초기엔 모더니즘종교적(로마 가톨릭) 경향의 시를 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보다는 널리 알려진 작품 <향수>에서 보이듯이 후기엔 서정적이고 한국의 토속적인 이미지즘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그만의 시 세계를 평가 받고 있으며 전통지향적 자연시 혹은 산수시라 일컫는다.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川)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납북되던 중 1950년 폭격에 휘말려 사망하였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을 통해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의 청록파(鹿)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 《압천()》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정지용의 연표]

연도

내용

1923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발간

1926

시《카페 프란스》《산엣색시 들녘사내》《Dahlia》

1927

시《이른 봄 아침》《바다》《향수()》《말》

1928

시《우리나라 여인들은》《갈매기》

1929

도시샤[] 대학 영문과졸업

1929~45

휘문고보 교사

1930

《시문학》동인. 시《유리창》《갑판 위》《호수 1·2》

1931

시《유리창 2》《석류》《아침》

1932

시《난초》《봄》《조약돌》

1933

《가톨릭 청년》편집 고문. 시《해협의 오전 2시》《임종》《비로봉》《시계를 죽임》

1934

시《다른 하늘》《또 하나 다른 태양》《불사조》《나무》

1935

시《홍역》《지도》시집《정지용 시집》

1938

시《구성동()》

1939

시《장수산()》《춘설()》

1941

시집 《백록담》

1945

경향신문 편집국장, 이화여전 교수

1946

시집 《지용시선()》

1948

평론집《지용 문학독문》보도연맹에 가입

1950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출처: 두산백과, 및 위키백과.>

 


 

 

Atachment
첨부 '1'
  • 웹관리자 2011.03.25 09:35

    무올 선배님,  멋진 시 올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원시립합창단의 노래를 첨부합니다.  즐감하세요.

  • 无兀 2011.03.25 09:54

    김호동 씨,

    매우 감사합니다.

  • 안건일 2011.03.25 22:53

    无兀

     

    나는 왠지 이시를 무척 좋와했지

    40여년 한국을 떠나 고향을 생각나게 했나봐

    뭔지도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것만 자꾸 생각 났었나봐

     

    일석

  • 无兀 2011.03.25 23:57

    일석,

    일석의 고향 얘기- "여긴 고등학교 친구 밖엔 없어!"-가

    이젠 내 마음에도

    절절이 들어 온다네.

    "아, 그런 심정이구나! 정말 그렇겠구나!" 하고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