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1489 추천 수 0 댓글 0
주례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며 ---

나는 나이 40대 초반부터 주례를 서기 시작하였다. 한 제자가 “주례 1호”가 되기 위하여 모친까지 동원하여 집요하게 장기간 요청을 하여 그 성의에 할 수 없이 수락하였다. 이 때 집사람이 주례사를 써주었고 사진을 보면 나는 놀란 토끼 같다. 교수인 “주례 1호”는 여전히 만나면 나를 깍듯이 모신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에 맞게 그 후 현재까지 170번 정도 주례를 섰다. “주례 2호”가 금년에 대회사 전무가 되었다는 신문기사가 나를 기쁘게 하여 주었다. “주례 3호”(현재 교수) 결혼 시에는 그의 석사지도교수(화공계의 대원로), 직속 상관(나의 KIST 상관)이 오셔서 매우 놀랐다. 한 제자가 결혼 3일 전까지 주례를 못 구했다고 하여 하루에 두 번 2시간 간격으로 강남, 강북에서 주례를 서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타계하였을 때 49일동안 또한 겹쳤을 때 외에는 기쁜 마음으로 주례를 서 왔다.

1990년대까지는 신랑, 신부가 거의 대부분 신혼여행 후,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집이나 학교로 인사를 왔다. 결혼피로연에서도 제자들과 합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이와 같은 풍속도가 확연히 달라져서 요즈음에 나는 예식이 끝난 후 사진 촬영 후 바로 예식장을 떠난다.

오랫동안 신혼여행 후 인사하러 오는 신랑이 없었는데 지난 주에 한 제자가 부인과 함께 하와이산 과자를 가지고 집으로 인사를 왔다. 물론 내 용돈인 수고비(?)도 가져왔다. 전에는 돈이나 상품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 여하튼 그 맛있는 과자를 지금 먹고 있다.

근본적으로 교수들이 주례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내가 주례를 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년에도 현재 다섯 번 섰다. 실제 어떤 교수는 본인의 박사과정 지도학생이 아니면 주례를 서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의 석사지도학생 결혼식에 그가 참석하여 내가 이렇게 결혼식에 참석하면서도 왜 주례를 안 서주었냐고 하였다니 자신의 소신 때문이라고 답하여 웃었다. 무슨 소신? 때문에 인성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여하튼 요즈음은 전문주례들이 있어서 편한데 굳이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앞에 언급한 대로 주례예우도 완전히 달라졌다. 주례 덕분에 제주도까지 갔고 지방에 가면 나는 관광명소를 찾는다.

이제는 주례를 그만 서게 되기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