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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1:30

죽음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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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불씨’ 200호  2009. 10. 1


죽음에 이르는 병
손봉호




  병 가운데 가장 못된 것은 암과 한센병(나병)이라 한다. 그런데 이 두 병의 특징은 초기에 아프지 않다는 것이고, 통증을 느낄 때는 이미 고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만약 암에 걸렸을 때 손에 작은 가시 하나 박혔을 때만큼만 아프면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 암 세포 몇 개만 들어내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에 아프지 않기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을 알지 못해서 조기에 고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는 것이다.

  몸의 병뿐 아니라 정신병도 비슷하다한다. 정신병자가 자신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한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비교적 쉽게 고칠 수 있다 한다.

  윤리적인 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한다.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시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때문에 사회에서 매장이 되거나 법의 처벌을 받으면 후회해 보았자 별 소용이 없다.

  한국인이 많이 앓고 있는 윤리적 병은 부정직이란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부정직은 암 못지않게 위험하고 치명적인데도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그렇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도 그것을 별로 아프지 않게 하는 진통제가 준비되어 있다. 하나는 거짓말이 그렇게 심각하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거짓말 좀 했기로서니, 뭐 그렇게 야단이냐!” 하는 듯이 눈만 껌벅껌벅한다. 또 하나의 진통제는 다른 사람들도 다 부정직하므로 자기만 정직하면 공연히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정직하면 자신도 정직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비도덕적이 아니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이 부정직의 병은 개인적이기 보다는 문화적인 것 같다. 한국문화에 젖은 사람은 한국에 살든지 외국에 살든지 모두 비슷한 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지난달에 남미의 몇 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가운데 한 나라에서 스스로를 교수라 하는 한국인을 만났다. 내가 만나는 다른 교포를 헐뜯기 위해서 급히 만나자 했다. 그런데 후에 교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 사람은 교수가 아닐 뿐 아니라 그 나라 대통령도 속인 유명한 사기꾼이라 한다. 한국말을 하는 사기꾼이 왜 그렇게 도처에 널려있는지 기가 막혔다.

  최근에 한국이 경제, 기술, 교육, 예술, 스포츠 등에서 충분히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왜 선진국 취급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물론 “한국 국회를 보라” 하면 그 이상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와 못지않게 부끄러운 사실은 우리나라의 투명성이 세계에서 40번째로 튀니지, 에콰도르, 요르단, 심지어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보다 더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이 병도 고치지 않고 방치하면 사회가 시름시름 약해져서 마침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