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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습니다. 집에 수면제가 떨어졌습니다.

 

아래의 노래를 듣다가 여러분들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올립니다. 들어보십시오.

저는 정이 많은 사람[아래 댓글 참조]압니다.

 

[노래] Josquin Desprez의 "Ave Maria"

http://www.youtube.com/watch?v=3-tdviODmXk&feature=related

 

 

Josquin des Prez (c. 1450 to 1455 August 27, 1521), often referred to simply as Josquin, was a Franco-Flemish composer of the Renaissance. He is also known as Josquin Desprez, a French rendering of Dutch "Josken van de Velde", diminutive of "Joseph van de Velde" ("of the fields"), and Latinized as Josquinus Pratensis, alternatively Jodocus Pratensis. He was the most famous European composer between Guillaume Dufay and Palestrina, and is usually considered to be the central figure of the Franco-Flemish School. Josquin is widely considered by music scholars to be the first master of the high Renaissance style of polyphonic vocal music that was emerging during his life.

  • 최창균 2012.04.28 23:41

    [최창균 Facebook (http://facebook.com/ckchoiyou; 현재 친구 3197명) 에서 가져옴)]

     

      오늘 서울대 공대 총동창회의 관악산 등반대회(사진 참조)가 있어 20여년만에 공대 등반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회장이 63동기회 회장(58회 윤우석)을 하였을 때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어 차마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420명은 1963년에 공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50주년기념으로, 회장이 주역이 되어, 동기(이장무; 후일 서울대 총장 역임)가 학장으로 있었던 공대에 1억원을 기증하였습니다.
      계곡이 아닌 험한 길로 등산을 하여, ...저는 중도에 내려와 화학생물공학부를 방문하였습니다. 우선 3개월 가까이 저를 기다린 우편물을 수거하고 몇 교수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쓰던 방에 , 마침 제자교수가 있어서 책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한동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마 반은 전에 들었을 것입니다.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에서도 세미나 공고를 배경으로사진을 찍었습니다.
      잘 떠들고 공대 식당에서 점심 잘 먹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 최창균 2012.04.30 04:11

    [최창균 Facebook (http://facebook.com/ckchoiyou)에서 가져옴)]

     

    지난 4월26일, 김성수와 함께 고3 담임선생님(송길상; 연세가 80 중반; 경기고 교장 역임)을 모시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연례행사입니다. 매년 새해인사겸 연초에 모셨으나 금년에는 처음 늦었습니다. 아마도 저와의 만남을 연초부터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매우 좋아하셔서, 내년부터는 이 때쯤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집으로 오는 도중 곳곳에서 꽃들에 현혹되었습니다. 마침 "삼산 김창숙 기념관"이 보여 들어가 보았습니다. 집 근처인데도 기념관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있으면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감회가 깊었습니다.

  • 최창균 2012.05.06 05:11

    [['79 - '90 학번 제자들에게 2003년에 이메일로 보낸 글]]

     

    임용 찾기운동

     

    임용 군은 1979년에 입학하여 1991년에 졸업하였습니다. 어제 용이의 모친으로부터 눈물어린 서신을 받고 이 글을 씁니다. 용이는 편모 슬하에서 자랐으며 그 집안은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으며 그 집안에는 유일하게 용이만 서울대학교를 다녀서 용이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용이는 우수한 두뇌의 소지자로 재학 중에 장기간 주로 달동네를 섭렵하였습니다. 한 때 용이의 누나와 동생이 강의실 밖에서 용이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1991년 2월 졸업식날 공무원이 되겠다고 나에게 말한 후 함께 33동 육교에서 사진을 찍은 후 여지껏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용이는 총각 신세입니다.


    용이는 지난 5년 동안 행방불명이라고 하니 혹시나 용이의 소재를 알고 있거나 우연히 만나게 되면 나에게 연락하여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내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Happy New Year!

     

    최창균으로부터

    [e-mail] ckchoi@snu.ac.kr

     

    [후기] 임용 모친께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 때 집사람과 함께, 직접 임용의 집(전남 나주 소재)을 방문하였음; 임용을 졸업시킨 것은 서울대 재직시절 제 최고의 성과임; 여전히 임용을 찾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