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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8 11:21

Edvard Munch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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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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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ream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절규>이다. 다리 난간에 홀로 서서 양쪽 귀에 손을 대고 몸을 휘면서 소리지르는 인간은 해골 같다. <절규>에는 뭉크 자신의 병적인 근심, 심리적인 긴장이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실제로 겪었던 뭉크 자신의 체험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두 친구와 길을 가고 있었다. 해가 저물었다. 나는 우울증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우뚝 서버렸다. 죽을 것같이 피곤해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검푸른 도시의 피오르드에 피와 칼같이 걸린 타오르는 구름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무서움에 떨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찌르는 크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뭉크의 1892년의 일기-

뭉크의 서술과도 같이 하늘은 붉은 핏빛이다. 하늘의 핏빛 구름이 악몽처럼 메아리쳐 서서히 검푸르게 강에 녹아 내리는 것 같다. 다리의 원근법은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었고,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는 강물과 하늘의 평면과는 상치되게 다리는 앞에서 날카로운 직각으로 잘려 있다. 공간도 사람들이 멀리 사라지는 것 같이 표현하고, 피오르드에 떠 있는 돛배들도 작게 축소해 절규하는 인간의 고립과 불안감을 더욱 확대하고 강조했다.

목청을 높여 소리지르는 인간조차도 파도치는 구름과 강물의 리듬처럼 주위 환경에 동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신분열증 환자는 하나의 심리학적 상징으로서의 장승푯말처럼 대지에 외롭게 서 있다. 그리고 하늘과 다리 밑 피오르드의 물결도 악몽처럼 메아리친다. 병원에 입원하여 신경쇠약증을 치료한 뭉크 자신의 절규는 자신의 알코을 중독과 다리 위를 걸을 때 느끼는 현기증의 병적 현상이다.
왜 이런 우울한 그림을 뭉크는 그려야 했는가?
"뜨개질하는 여인네나 독서하는 남자만을 영원히 그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나는 숨쉬고, 느끼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고 뭉크는 자기 심정을 틸어 놓았다.
뭉크의 절규는 정신질환을 겪게 하는 불안한 현대사회에 대한 보고이며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뢰텐 출생.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심한 이상성격자였으며,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여의고, 그 자신도 병약하였다. 그와 같은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풍에 영향을 끼쳤다. 오슬로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1881∼1884),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초기작품 《병든 아이》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 일관하고 있다. 1889년 한여름을 바닷가의 마을에서 보내고, 신비스러운 밤의 불안을 잡아 《별이 있는 밤》 《백야(白夜)》 등을 그렸다. 1890년 파리로 가서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으나 파리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의 목판화(木版畵)와 피사로와 로뜨렉의 작품이었으며, 고갱과 고흐의 매력이었다. 1892년 가을, 베를린미술협 회전에 출품하였는데, 그것들은 초기의 애수어린 서정적 성격을 더욱 내면화하고, 생(生)과 사(死),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여기서 뭉크의 독자적인 세계가 확립된 것이다. 게다가 베를린에서의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 깊이를 더하게 하였다. 그 후 파리에서는 말라르메 등과 사귀고 입센을 알게 되었으며, 명작 《생명의 프리즈》 연작(聯作)을 완성하고, 1894년부터 판화를 시작하였다. 1908∼1909년에는 신경병으로 코펜하겐에서 요양하였으며, 그 후부터 색채가 밝아지고, 문학적 · 심리적인 정감이 두드러졌다. 1937년 나치스는 독일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퇴폐예술이라 하여 몰수해버렸다. 만년에는 은둔생활을 하였다. 한편 판화가로서도 근대의 대작가이며 표현파의 선구 자이자, 노르웨이 근대회화의 이재(異才)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밖의 《봄》 《질투》 《절규》 《다리 위》 《저녁시간》 《죽음의 방 The Death Chamber》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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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erty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I863~1944)의 그길들은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을 통해서 인간의 위기의식을 극대화한다. 그의 <사춘기>는 어린 소녀가 처음 겪는 생리의 충격적인 경험을 단조로운 색과 형식을 통해 우울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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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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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d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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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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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ing on Karl Jo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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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the Sick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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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nc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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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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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in St.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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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Portrait with Burning Cigar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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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Portrait between Clock and Bed





1921. 뭉크


에드바르 뭉크(노르웨이어: Edvard Munch, 1863년 12월 12일 ~ 1944년 1월 23일)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적인 화가이다.

그의 초상이 1000 크로네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신(新)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의 수법을 사용하여

삶과 죽음에의 극적이고 내면적인 그림을 그렸다.

1892년 베를린으로 이주, 그곳의 미술 협회에 출품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작품에도 그 영향이 드러나 있는데,

나치스는 퇴폐예술이라는 이유로 그의 그림을 몰수하기도 했다.

작품으로 <절규>, <병든 소녀> 등이 있다.

생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에 존재하는 고독, 질투, 불안 등을 응시하는 인물을,

인물화를 통해 표현했다.

표현주의적인 화풍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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