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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4 17:47

삐친 것도 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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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친 것도 잊은 거야                              2005년 12월3일 청계산 자유산행

날씨가 제법 춥다.
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늦게 도착하는 대원들을 기다려주는 마음도 푸근하다.
초조한 기색이 없다.

산은 이미 발가벗었다.
속살이 다 들여다 보이는 산은
이제 겨울잠을 자려는 듯 두툼한 낙엽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부자리는 얇아졌다 두꺼워졌다 한다.
한 두 개의 마른 잎새가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바르르 떨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세월을 헤아리고 있다.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헬기장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일찍 할아버지가 된 대원이
지난 주 손주녀석의 재롱을 자랑한다.
과일을 깎아주니 할아버지 먼저 먹으라며 주드란다.
무척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다른 대원이 평가한다.
“녀석 권력의 핵을 벌써 아는구먼”

다른 여성대원이 이야기한다.
외손녀한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단다.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단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모든 사람이 할머니한테 먼저 음식을 드려서……”
다른 대원이 또 평가한다.
“녀석 벌써 우먼 파워를 아는구먼”

손주 손녀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몸은 이미 넘어야 할 고개를 넘고 말았다.

안녹영 총무가 안내한 두부요리전문점 토담 두부집에 들렀다.
콩 음식이 몸에 좋은 것이라며 모두들 대 환영이다.
콩 음식이 좋다는 것은 이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입증된 건강식이다.
상에는 콩으로 만든 음식과 푸성귀가 가득하다.
좁쌀 막걸리도 한 사발 들어온다.
비지찌개, 된장찌개, 두부무침, 두부파전, 콩 조림, 생 두부, 등

푸짐하게 배를 불린 대원들이 궁둥이를 뒤로 슬며시 뺀다.
주린 배를 채우고는 느긋해진 것이다.
얼었다 녹은 얼굴에 막걸리가 들어 갔으니 소년처럼 볼그스레하다.

한 대원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달 전 청첩장을 받았는데 참석을 못할 것 같아
가까운 친구에게 대납을 부탁했단다. 물론 차후에 만나서 주기로 하고……
그 친구를 다른 자리에서 여러 번 만났는데도
그 친구는 이야기 하질 않더란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 다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또 만났는데
그제서야 그 때 그 사실을 이야기하더란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 싶더란다.
깜박이다.

또 다른 대원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느 모임에서 두 사람이 죽자 사자 싸우더란다.
자기가 보기엔 그리 큰 이슈도 아닌데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막무가내였단다.
분위기가 하도 험악해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기가 거북하더란다.
결국은 하나가 “삐쳐서” 자리를 차고 나가 버리드란다.

다음모임에 다시 나가 보니
전번에 싸우던 그 사람들이 재미있게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란다.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단다.
한 대원이 코멘트한다.

“삐친 것도 잊은 거야”
두부 많이 먹자.

분당골 야탑산채에서
박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