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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란다.
1980년 이후 12월 기온으로는 최저를 기록한 날이다.
25년만이라고 매스컴은 호들갑을 떤다.
아내가 깨우는 것도 모르고 그냥 잠에 빠져 있다가
호들 짝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늦었다.
전일 송년모임에서 과음을 한데다가 밤 12시가 훨씬 넘어 잠에 든 까닭이다.

안녹영 총무에게 전화를 한다.
대원들은 과천에 모여 청계산을 넘어 양재동 옛 골로 오는 코스를
나는 옛 골에서 이수봉을 거쳐 그들과 중간지점 어디에선가 만나기로 하고 옛 골로 향한다.
혼자다.
밤새 기온이 쭈~욱 내려간 산길을 혼자 걷는다.
눈발이 날린다. 이른 산행도 아닌데 등산객이 별로 없다. 추운 날씨 탓인가?
등산화 밑으로 “뽀드득”하고 밟히는 눈 소리가 아침의 적막을 깬다.

지나는 이 없는 산길을 혼자 오르며 2005년을 회고한다.

1월엔 눈 구경하려 떠났던 계방산, 먼지만 풀풀 날리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하고,
2월엔 기어코 눈꽃을 보겠다고 떠난 소백산 “風獄의 언덕”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고,
4월에는 우리가 다녀온 천태산 영국사가 산불로 휩싸여 안타까워하던 기억도 난다.
이어 서리산, 마니산, 북한산, 금수산, 발왕산, 명성산을 거쳐 오늘 청계산을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김권택 회장의 제안으로 “토요 자유산행”도 시작해서
매주 토요일이면 청계산을 오른다.
가벼운 운동이지만 하고 나면 개운하고
또 친구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는 맛도 별미다.
꼼꼼하고 부지런한 김회장이 만보기로 측정한 결과 약 만보의 산행이어서
“만보회”로 하자고 해 모두 웃기도 했다.

귓전을 때리는 매운 바람과 눈보라가 나를 꿈속에서 깨운다.
어느새 이수봉 정상에 선다. 아직도 일행을 만나지 못해 그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애써 올라온 산을 다시 내려가자니 손해 보는 기분이다.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춥다.
밑지는 기분이지만 다시 과천 쪽으로 내려간다. 움직이지 않으니 추워 견딜 수가 없다.
추위를 이길 정도로만 야금야금 걷는다. 전화를 해 본다. 어디쯤 오고 있을까
안녹영 충무는 나보고 더 내려 오란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천천히 걷는다.

청계사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원정일 대원을 만난다. 반갑다.
옛 골에서 선약이 있다고 쉬지 않고 달려 왔단다.
백두산에서 사온 토종 꿀차를 권한다. 따뜻하고 달콤한 차가 온몸을 녹여준다.
그는 다시 총총히 사라진다. 머지 않아 대원들을 만날 기쁨에 추위도 잊는다.
이윽고 대원들의 얼굴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태일, 한부영대원이 선두다.
만나면서 “하이 파이브”를 한다. “만남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추위가 확 가신다.
친구들의 우정이 온몸을 녹인다. 춥지 않다.

다시 이수봉 정상에 이른다.
허영환 대원의 “복분자”가 등장한다. 결혼식 때문에 “복분자”만 건네주고 사라졌단다.
열성이다.
기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눈이 보이는 쪽으로 모두 포즈를 잡았는데
카메라가 얼어버렸다. 작동이 되질 않는다.
큰 카메라는 두고 작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영하의 날씨에 작동을 멈춘 것이다.
대원들이 민병수에게 주라고 한다. 그의 사타구니에 넣으면 다 녹는단다.
부인도 동의한다. “夜 병수”란다. 어쩌면 저렇게 “천생연분”일까?
천생연분??? 신문에서 본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 통수권자가 누구를 지칭하며 한 말이다.

끝내 카메라는 작동을 거부하여 그냥 하산한다.
카메라맨의 실수다. 사타구니에 넣고 오는 건데 차가운 배낭 속에서 추위에 떨게 했으니
그 놈이 반항할 만도 하다.

옛 골 버스 종점의 유명한 돼지고기 삼겹살구이 집으로 들어간다.
대형오븐에서 훈제로 기름을 먼저 뺀 후 석쇠에 올려 굽는 집이다.
선지해장국으로도 이름을 떨친 집이다.
김권택 회장이 “송년사”를 한다. 멋있게 준비해 왔는데 장소관계로 간단히 하겠단다.
새해에도 건강하시라는 말로 대신한다. 대원들이 박수로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추었다 녹은 몸에 소주를 마시니 금새 온몸으로 알코올이 녹아 든다.
“낮 술에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 본다”는데 한쪽에선 “폭탄주”가 나온다.

누가 일년을 12달 365일로 해 놓았는가?
만일 이런 구분이 없었다면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정승철 대원의 예리한 지적이다.

새해에도 우리는 산을 오를 것이다. 언제까지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이 내린 귀한 친구들과 어울려 산을 오를 것이다.
금쪽 같은 친구들이 아니면 어찌 혼자 산을 오르겠는가?

친구들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