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18  고백성사 (告白聖事 Confession)

독일인 하나가 신부에게 고해하러 왔다.
“신부님, 저는 2차대전 때 도망자 한 사람을 저희 집 다락에 숨겨준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도망자를 숨겨준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람한테서 일주일에 50 마르크씩 숨겨준 값을 받았걸랑요.”
‘음, 그건 별로 잘 한 일이 아니군요. 숨겨 준 대가를 받다니.
그러나 그 사람 목숨을 구해 준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큰 죄는 아닐 수도 있지요.  
하느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 볼께요.
제가 그 사람한테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야 하나요 ? ”


가톨릭을 믿거나,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걸림돌의 하나가 ‘죄의 고백과 용서’이다.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 준다는데 과연 용서가 될 것인가?
용서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안심하고 죄를 더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즉, 용서함으로서 죄 저지름을 조장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자연히 따른다.

가톨릭에서의 ‘정답’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죄는 고백하여야 하며,
고백된 죄는 얼마든지 용서된다’는 것이다.

성당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입구 좌우에 ‘고백소’가 마련돼 있다.
고백소(告白所 또는 고해소 告解所)의 문 위쪽에 조그만 불이 켜져 있으면,
고백을 받을 신부가 그 안에 있다는 표시이다.
고백소 안은 고백인 방과 사제의 방으로 나뉘어 있고, 두 방 사이에는 아주 자그만 창문이 있다.
고백인이 들어가 앉으면 창문이 열리고 사제가 인기척을 낸다.
방 안은 깜깜하여 서로 보이지 않는다.
고백을 하면 사제는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 주고, 죄를 용서해 주고, ‘보속’을 준다.
‘보속’이란 죄를 용서받기위하여 해야 할 벌칙과 같은 것이다.  

내가 참례하는 미사의 신부는 언제나 ‘고백하러 오세요.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백하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여러분의 목소리도 구분하지 못하고, 고백한 내용을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고 고백을 권고한다.

사실이 그렇다. 죄를 인식하고, 고백할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그 사람을 보기가 꺼려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과는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고, 용서받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사이가 소원해진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교리서(1468항)는 ‘고해성사의 완전한 효능은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켜 주고 지고한 우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하게 해 주는 것’ 이며,
고해성사의 목적과 효과는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가톨릭에는 판공성사(判功聖事)라는 특별한 제도가 있다.
교회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과 성탄절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로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받는데, 이를 판공성사라 한다.
보편교회법에는 부활시기를 전후하여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도록 규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두 번 고해성사를 보라는 것이다.

나는 내 맘대로 ‘죄의 다과는 고백의 다과에 반비례한다.’ 고 정의하기도 한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교회에는 두 가지 물이 있으니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하느님은 언제나 ‘처음처럼’ 용서해 주신단다.

마더 데레사는 말했다
‘우리는 고해소에 죄를 지은 죄인들로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에는 죄를 용서받은 죄인들로서 나옵니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