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친구의 잘못을 부드럽게 꾸짖읍시다.

2013. 2. 27.

 

 

군대에는 어느 부대건 ‘고문관’이 있게 마련입니다.

고문관이란, 명령을 잘 못 알아들어서 엉뚱한 언행을 하거나,

부대 생활에 적응을 못해 헤맴으로서, 본인이 불이익을 당함은 물론,

연대 책임으로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병사에게 붙여진 별명입니다.

 

우리나라 건군 초기에 미국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에 파견돼 있었는데,

이들이 한국군과 언어소통이 안 되므로,

의도와는 다른 우스운 결과를 자주 빚었습니다.

그 이후에 좀 모자라는 행동으로 말썽을 부리는 병사에게

‘고문관’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부대에 대대장이 시찰을 나왔습니다.

군대에서는 반드시 ‘직속상관 관등 성명(官等姓名)’을 외웠고,

점호 때 장교들은 흔히 그 걸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대대장이 하필 고문관에게 질문을 한 겁니다.

- 대대장 계급과 이름이 무언가?

고문관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지가 기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이 말씀을 들었다면

과연 그들은 그들이 이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맞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연상할까요?

 

저는 대부분이 후자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 할 수 없어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도 똑 같은 잘못을 행하나, 스스로의 잘못은 전혀 인식을 못하고,

남의 잘못만 밝혀 지적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흔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장 전입’을 하면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지난 10년간 위장전입으로 처벌된 국민이 5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판결을 한 재판관 중에는 위장전입을 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 것은 ‘관례’요 ‘부득이’한 일이고,

남이 한 일은 ‘유죄’라는 것입니다.

처벌받은 이들의 혼잣말이 들려옵니다.

“지가 기면서”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아직까지 끈질기게 생존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이들을 단죄하는 우리들은 과연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겠습니까?

 

아랫사람이 ‘짐을 나를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거나’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거나’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부하직원들을 안 섬기지’ 않았을까요?

 

 

잘못을 스스로 깨닫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남들도 다 하기에 한 일인데

실은 잘못된 일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가까운 친구끼리 잘못을 일깨워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레위기 19,7)

 

서로 간에 ‘서슴없이’ 그러나 ‘부드럽게’ 지적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