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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淸富) 만이 존경받는 사회를

2012. 11. 14.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는 그가 번 돈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기부함으로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현자(賢者)라는 멋있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저는 이런 기업인들의 기부행위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을 가실 수 없습니다.

위에 예를 든 현자는 주식을 사고팔아서 돈을 법니다.

 

주식투자라는 게 뭡니까?

근본적으로 ‘제로 섬’ 게임입니다.

그 사람이 번 돈은 다른 사람들이 잃은 돈이지요.

나보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과 게임을 해서 돈을 따는 것이

정말 하느님께 칭찬 받을 일일까요?

 

그런 돈을 혼자 갖는 것 보다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것이 좋겠지만,

저는 그런 돈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조업체의 기부에도 비슷한 ‘억울함’을 느낍니다.

제조업으로 돈 벌었다고 자랑스럽게 기부를 하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그 회사의 제품을 산 사람들에게서 번 돈입니다.

그러면 그 기부는 누가 한 것입니까?

바로 소비자들인 우리 돈으로 그들이 생색내는 거 아닌가요?

진정 사회를 위한다면 제품 값을 내리는 것이 더 정의롭지 않은가요?

‘적정 이윤’의 기준을 잡기가 애매하므로,

그냥 ‘그들의 선의’로 치부하고 넘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부(富)’에 대해서 늘 경계하십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루카 16,11-15)

 

 

‘불의한 재물’ 에서는 청부(淸富) 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재물을 다루는데 성실하여 청부와 천부(賤富)를 잘 구분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늘날의 경제사회에서 과연 ‘나는 청부를 쌓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느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하느님의 위치에 놓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가 재물을 하느님처럼 섬기겠느냐?’고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분야에서의 기준을 ‘돈’에 두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볼수록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코 10,25)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편으로는, ‘불의한 재물’을 막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