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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 무장한 선교

2012. 12. 5.

 

신라 선덕여왕이 공주 시절, 당나라 태종이 선물을 보내 왔다.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 꽃그림과 그 꽃씨였다.

이를 본 여왕이 "이 씨를 심어서 핀 꽃은 향기가 없겠구나."라고 말했다.

‘어찌 그림만 보고 그 꽃의 향기 없음을 안다는 말인가?’

신하들은 의아해했다.

 

그 씨를 심어 드디어 꽃이 피었다.

그런데 과연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

신하들이 감탄해서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느냐고 묻자 여왕은

‘꽃은 향기로 벌 나비를 부르는데, 이 꽃 그림에는 벌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음이요.’

하고 대답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그 꽃만 향기가 없었는지, 여왕의 영민함을 얘기하려고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나 지금에나 모란꽃은 향기가 있다고 합니다.

모란이 억울해 할까봐 한 마디 덧붙이는 겁니다.

 

 

‘선교’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향기’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15)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코린토 1서 9,16-)

 

 

복음을 선포함이 우리의 의무일진대 과연 어떻게 해야 그 선포가 설득력을 갖겠습니까?

저는 ‘지식’보다도 ‘향기’가 우선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이 지저분한 사람이 비누를 팔러 다닙니다.

이 비누를 쓰면 얼굴이 깨끗해지고 피부가 좋아진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면 당신 얼굴은 왜 그리 지저분합니까?” 하고 물으니,

‘나를 보지 말고, 이 비누의 효능을 보세요.’ 합니다.

손님은 그 비누의 효능을 시험해 볼 생각도 안 합니다.

 

멋있는 문구로 선전을 잘 한 식당에 갔다가 맛이 없어서 실망을 한 손님은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습니다.

‘맛’에 자신이 생길 때까지는 선전을 안 하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말씀’이 좋은 목회자를 따라 교회를 옮겨다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말씀’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으면 결국 신도들은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향기없는 꽃’이 되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이 믿는 종교라면 나도 한 번 가 볼까?’ 하게 만드는 향기를 지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한 ‘향기’를 갖춤이 우리 가톨릭의 한 지향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 향기에 자신이 없어서 ‘지식 안내’ 수준의 선교에

머물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입단 권면’에는 상당한 자신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쁘레시디움은 정말 좋은 단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한번 주회합을 참관해 보십시요.” 하고 과감히 말합니다.

 

참으로 축복받은 일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