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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이려고 단식하지 마라.

2013. 2. 20.

 

이조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중상주의(重商主義)를 주창했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은 여러 저서에서

허위의식에 빠진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그가 쓴 소설 ‘호질(虎叱)’에서, 호랑이들이 모여

저녁에 무얼 먹을까 궁리합니다.

훌륭한 선비는 고기도 정결하고 맛도 좋을 것 같아,

도학자 북곽선생(北郭先生)을 잡아먹으러 갑니다.

그때 북곽선생은 홀로된 뒤 수절하여 열녀 표창까지 받은 과부

동리자(東里子)와 즐기고 있었습니다.

열녀로 알려진 이 과부가 실제로는 성(姓)이 각각 다른

다섯 아들을 두었습니다.

 

어머니 방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자, 아들들이 요괴의 짓으로 판단하여,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니, 북곽선생은 날쌔게 도망치다가 분뇨 통에 빠집니다.

호랑이가 이곳에 당도하여, 알려진 바와는 딴판인 그를 보고

그의 위선과 이중인격을 준열히 꾸짖자,

북곽은 온갖 구차한 변명으로 목숨을 구걸합니다.

 

‘비록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참회하고 몸을 깨끗이 하면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 하오니 ---’

하며 빌어대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 낯설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다른 소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의 주인공은

분뇨수거팀장 엄행수(嚴行首)입니다.

겉치레만 번드르르한 선비들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 비천한 일을 하는 그를 멸시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치스러운 옷가지를 부러워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으며, 가무음곡을 멀리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함이 없고, 남에게서 욕먹는 일이 없으며,

비록 하는 일은 불결하지만 그의 삶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의식 있는 이들은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穢=더러울 예)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북곽선생 같은 이들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십니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

 

 

남에게 보이려고 단식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정말 좋아하는 참된 단식을 일러주십니다.

 

우리 주위의 보통사람들은 남보라고 단식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내 집에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덮어 주고,

혈육을 피하여 숨지는 않았는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