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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91 메주고리예 - 아키타

 

가톨릭 입문 초년, 앞집 사는 부인이 ‘메주골’에서 사왔다며 묵주 한 쌍을 선물했다.

우리나라의 지방 이름을 거의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메주골’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 성당에서 사왔으려니 하고 서랍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곳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메주고리예’로,

성모가 발현했다고 알려져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오는 곳이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우리 부부를 위해 사온 귀한 선물이 고마워서

여행 때마다 그 묵주를 가지고 다닌다.

 

당시의 성당 주임 신부도 그곳을 다녀와

커다란 ‘은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생 형의 종교를 무시하던 동생이 메주고리예를 함께 다녀온 뒤로

열심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메주고리예 성당-01.jpg

 <메주고리예 성당>

 

 

1981년 6월 25일 당시 유고슬라비아 메주고리예 마을을 굽어보는 산기슭에서

6명의 어린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만났으며,

이후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에게 반복해서 기적이 일어났고

오늘날까지 1500만 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모 마리아는 비치카, 미랴나, 마리야, 이반, 아콥, 이반카(15세)에게 나타나

"나는 평화의 여왕이다. 많은 참된 신앙인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화해시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여섯 명의 어린이들에게 각각 열 개씩의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그들은 밝혔다.

미랴나(Mirjana Dragicevic - 1965년 출생)는 열 가지의 마지막 비밀을 받은

1982년 12월 25일까지 매일 성모를 만났으며, 발현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생일인 3월 18일에 매년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1987년 8월 2일부터는 매달 2일 성모의 목소리를 듣거나 모습이 보여

비신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비치카 이반코비치 (Vicka Ivankovic - 1964년 출생)와 마리아 파블로비치

(Marija Pavlovic - 1965년 출생), 이반 드라기체비치(Ivan Dragicevic/1965년 출생)는

지금도 매일 성모를 만나며, 아콥 촐로(Jakov Colo - 1971년 출생)는

1988년 9월 18일 열 번째 마지막 메시지를 주면서 매일의 발현을 끝내고는,

그의 일생동안 매년 12월 25일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증언했다.

 

 

1991년 지역 주교회의는 "초자연적 발현이나 계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확인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메주고리예 순례단을 공식 모집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과연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이 사실이며, 기적인가에 대한

찬반 논쟁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담당 교구에서는 초월적 현상에 대해 아무런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확고한 입장인데 반해, 당시의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독립한 이후의 주교단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판단을 넘겨버렸다.

 

 

교황청은 2010년 3월 연구를 담당할 별도의 연구위원회를 가동시킨 상태이다.

검토가 끝날 때까지 교황청은 ‘메주고리예 주교 입장을 존중하나’

‘신자들은 메주고리예에 갈 자유가 있으며, 신자들이 방문할 경우

지역 교회가 사목적 도움을 줘야 한다.’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아키타의 성모상-01.jpg

 

 

도쿄 북서쪽 약 600㎞ 떨어진 인구 1백여만의 조그만 광업도시

아키타시(秋田市)의 근교 유자와다이 언덕에 있는 성체봉사회 수도원의

목각 마리아상이 1975년 1월4일 눈물을 흘렸다.

 

이곳은 1973년 7월부터 10월까지 성모 마리아가

사사가와(笹川) 수녀에게 세 차례 발현해

교황과 주교와 사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알려진 곳이다.

 

 

와카사 사부로씨가 1963년 조각한 이 성모상은

1981년 9월15일까지 101회 눈물을 흘렸는데,

목격자는 2천여 명에 이르고 눈물이 흐르는 모양과 시간,

그리고 양 등은 매번 달랐으며, 많은 양의 눈물이 발끝까지 흘러 고이기도 하고,

뺨에 물방울이 맺히기도 했다는 것이다.

눈물을 분석한 아키타 대학과 기후대학의 법의학 교실에서는

"인간의 체액, 즉 눈물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동산은 성모 성지로 조성되었고 순례자들,

특히 한국의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아키타의 성모 발현과 성모상의 눈물 역시 다른 곳의 예와 같이

진위 여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관할 니가타 교구장 쇼지로 이토오 주교는 현지를 방문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네 번이나 눈물을 목격하고

 두 번 눈물을 핥아 보았는데 맛이 짜서 사람의 눈물 같았다.’며

‘인간의 장난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천명했다.

 

 

이토오 주교는 1984년 이 사실을 인정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일이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면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초능력에 의한 것이고 둘째는 악마의 짓이며 셋째는 초자연의 작용이다.

  우선 사사가와 수녀에게 초능력이 있어, 그녀의 눈물이 성모상으로 옮겨진다는 설.

  동경공과대학 이타다니 교수는, 초능력을 작용시키려면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수녀가 자고 있을 때,

  혹은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사가에 가서 이 일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때에도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것으로 보아 초능력 설은 부정된다고 하였다.

 

  둘째, 악마의 짓이라면 신앙상 나쁜 결과가 나와야 할 것인데,

  순례자들에게는 신앙상, 건강상 좋은 결과만 나와 있으므로

  악마의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아니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토오 주교는 “초자연성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으나,

신앙과 도덕에 위배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없다.” 며

로마 성청으로부터 최후판정이 내릴 때까지는

아키타의 성모에 대해 공경을 표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교황청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으나,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1988년 6월, 아키타 성모상의 눈물과 성모 발현 메시지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