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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96 설 - 차례

 

섣달 그믐날 저녁, 한 사나이가 바에 홀로 앉아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사내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덩치 큰 트럭 운전사가 사나이의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그의 술잔을 들어 그대로 원샷을 해 버렸다.

 

깜짝 놀란 사나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운전사는 그의 어깨를 타악 두드리며 말했다.

‘친구, 장난이야. 당신이 하도 우울해 보이기에 내가 장난 친 걸세.

 내가 한 잔 사지. 그래 뭐 때문에 그리 벌레 씹은 표정인가?’

 

사내가 힘없이 얘기했다.

“금년 내내 되는 일이 없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최악의 날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을 했지요. 보스가 화가 나서 바로 해고하더라구요.

 집에 가려고 차고엘 가니까 글쎄 누가 내 차를 훔쳐갔지 뭡니까?

 택시를 잡아타고 한참 가다가 지갑을 사무실에 놓고 온 걸 알았습니다.

 운전사에게서 쫓겨나 걸어서 집에 들어가니까 마누라가 정원사랑 침대에 누워있더군요.

 그 래서 한 잔 하려고 이리 오다가, 이렇게 재수 옴 붙었는데 새해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싶어 청산가리를 샀지요. 술잔에 청산가리를 타 넣고

 마시기 전에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판인데 느닷없이 당신이 나타나

 술까지 뺏어 드시다니...”

 

 

☺☺☺☺☺☺☺☺☺☺☺☺☺☺☺☺☺☺☺☺☺☺☺☺☺☺☺☺☺☺☺☺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사회의 근간을 받치던 유교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1790년 전라도 진산(珍山)에 사는 천주교 신자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살라버린

폐제훼주(廢祭毁主) 사건이 일어났다.

 

천주교를 반대하던 관료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아비도 임금도 모르는 불효불충한 무리들’

이라고 상소했고, 천주교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정조도 할 수 없이

국시를 어긴 자들을 사형에 처하고, 금교령을 내려 서학서를 불태우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조선 교회가 제사를 미신행위라고 배척한 것은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Gouvea, 湯士選)

조상 제사에 미신적 요소가 내포돼 있으므로 금지함이 마땅하다는 서한을

보낸 데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청은 제사를 허용하기 시작한다.

1935년 교황 비오 11세는 공자 존경 의식을 허용하고,

이듬해 일본의 신사 참배도 허용하면서, 혼인, 장례 등의 사회 풍습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치를 취하였다.

 

1939년 중국 예식에 대한 훈령에서는 상을 모시고, 공자를 존경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시체나 죽은 이의 상, 단순한 이름이 기록된 패(牌)에 존경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천주교 토착화에 대한 재인식과 비기독교 민족 안에 내재한 영적 요소들과

가톨릭과의 조화, 동방 민족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해와 통찰,

미신적 요소의 감소 등이 원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전통적 효사상(孝思想)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해석된다.

『--- 주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아비를 공경하게 하셨고 또한 어미의 권위를 보장해 주셨다.

아비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죄를 벗는 것이며 어미를 공경하는 것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너는 네 아비가 늙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아라. …자기 아비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어미를 노엽게 하는 것은 주님의 저주를 부르는 것이다』라는

집회서 말씀이 (집회3 1~4 12~13 16) 이를 받치는 구절로 인용된다.

 

 

 

한국 가톨릭 주교단은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지침을 정하고,

시체, 무덤, 죽은 이의 시신이나 이름의 패 앞에서 절과 분향,

음식을 차려 놓는 것 등을 허용하였다.

 

 

이 아름다운 제사 예식안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제사 절차와 거의 다름이 없다.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든지, 예식 때 성호를 긋는 것,

축문의 현대화 내지 기도화 등만이 다를 뿐이다.

 

 

다만, 혼령이 제물을 흠향하도록 잠시 문을 닫는 합문(闔門)이나,

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고복(皐復), 사자(使者)로 하여금 죽은 이의 혼을

고이 모시고 가라고 차려 놓는 사잣밥이나 신발 등

미신적 요소가 많은 부분은 금지한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제사 때 조상의 혼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가신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차례는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를 갖추어 조상 은덕(恩德)을 기리며

감사하고, 가족의 화목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모임이다.

 

설혹 구성원들의 종교가 다를지라도 서로 의논하여

자기 집안에 맞도록 절차를 만들어 치르면 될 일이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