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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100 Mother Flora 이야기 - 1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 는 사인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스튜어디스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도마도 주스 한 잔 주세요” “도마도 주스 한 잔 더요”

“냉수 한잔 주실래요. “세븐 업 한잔” “콜라 한 깡 부탁해요”

새벽 3시 넘어 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8시 30분 마닐라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1998년 10월, 직원 한 명과 필리핀 출장길이다.

 

 

친절하게 심부름을 하던 스튜어디스가 다가오더니

‘손님, 비즈네스 석에 자리가 비었으니 그리로 옮기시지요’ 한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바로 이런 말이렷다!’

스튜어디스가 안내하는 자리에 가니 나란히 세 자리가 비어있다.

“아가씨, 기왕 빈자리, 한 명 더 부르면 안 될까요?”

스튜어디스가 흔쾌히 허락한다.

 

직원에게 가서 좋은 자리로 가잤더니 ‘전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한다.

상사 옆자리의 2등석 보다 홀로 3등칸이 훨씬 좋다는 얘기겠지.

돌아오다가 보니 앞자리에 예쁘장한 수녀가 한 명 앉아 있다.

“수녀님, 비지네스칸에 자리맡아 놓았으니 가시지요”

그래서 그 수녀가 3시간 30분의 여행 동반자가 되었다.

 

 

우선 가톨릭임을 밝히고, 술 냄새 펄펄 나는 걸 양해해 달라는 멘트로 시작했다.

“밤새 술 마시다가 정신없이 탔습니다. 여행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묵주도 못 챙겼네요”

‘그래요? 그럼 이 묵주 쓰세요.’

허리춤에 걸쳐있는 묵주를 선뜻 건넨다.

 

예쁜 구슬 사이에 금속 양각의 베드로 성당 바실리카 건물 4개,

그리고 한 개에는 교황 얼굴과 뒷면에 교황 문장(紋章)이 있는 훌륭한 묵주였다.

“고맙다”는 말은 좀 약한 것 같아서 추어주느라고

“아니, 이 거 교황께서 주신 것 같은데요?”하니까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뭐 이런 통 큰 수녀가 다 있어? 가문의 영광인 묵주를 처음 본 사람에게 선뜻 내주다니!”

 

수녀와 무슨 싸울 일 있다고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신 추기경(당시 필리핀 교구장 Jaime Cardinal Sin 1928-2005)과

 점심 한 적이 있었지요.”

‘그랬어요?’

전혀 존경의 표정이 아니다.

“마더 테레사도 만났었구요”

‘그랬구먼’

“‘수녀중의 수녀’와 만났다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다니,

  보통 내공이 아닌걸!”

“수녀를 시스터라고 부르는데 마더라고 불리는 수녀는 뭡니까?”

‘똑같은 수녀예요. 나도 마더라고들 불러요.’

 

한 번 더 찔러보았다.

“오상의 비오 신부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聖 비오 = Francesco Forgione : 1887 - 1968 이탈리아 피에트렐치나 출생.

 예수와 마찬가지로 두 손, 두 발, 옆구리의 다섯 군데에서 피를 흘렸다 - 五傷.

 믿기 어려운 수많은 기적의 주인공. 2002년 성인품에 오름>

 

‘음, 그분이 날 참 이뻐했지. 어렸을 때 놀러 가면 늘 안아주셨어요.’

 

 

마더 플로라와-01.jpg

 

 

 

“항복!”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수인사를 다시 한 수녀가

Mother Flora(꽃의 여신 - 姓은 Zippo : 지포 라이터의 그 지포)이다.

이태리의 양반집 출생, 1남 6녀 중 세 자매가 수녀,

큰 언니가 프란체스코 수녀원의 총장 수녀, 플로라는 아시아 관구장,

유일한 남동생은 당시 이태리 최대 보험회사의 부사장이었다.

 

 

이러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비행기는 마닐라에 이르러 하강하고 있었다.

마더 플로라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마르띠노, 너와 내가 어떻게 만났지?’

“예, 제가 술이 취해서 --- 2등칸으로 옮겨서 ---”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너는 하느님 일을 하라고 나와 만나게 해 주신 거야.

 이제부터 너는 나를 도와줘야 돼!’

“아, 붙잡힌 이 손을 빼내기 어렵겠구나” 느낌이 들었다. 

 

 

다음 필리핀 출장 때 마더 플로라의 수녀원을 찾아갔다.

빈민촌 복판에 학교를 세워 애들을 가르치고, 주변의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었다.

마닐라에서 프로펠러기로 한 시간 반 떨어진 남쪽 사마르 섬,

착륙해서도 비포장도로로 여러 시간 가야하는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

71세의 노 수녀 플로라가 그곳에 지은 수녀원을 수시로 다니고 있었다.

 

운영은 이태리의 프란체스코 수녀원 본부 보조금과

마더가 이태리에 가서 직접 모금해 오는 돈으로 충당하였다.

 

마더 플로라는 한국에 올 때마다 꼭 나를 불렀다.

이태리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고, 너 좋아하는 거 사왔다고

꼭꼭 싼 양주병을 주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플로라를 진짜 ‘마더’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馬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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