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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자리를 없애자

2012. 11. 7.

 

아서 왕은 5세기에서 6세기경 영국을 살린 구국의 영웅으로,

그의 활약과 기사도 정신,  모험 등이 널리 서유럽 일대에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기사도 정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어,

서구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형성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역사적 실재성은 희박하지만, 완전히 상상의 인물도 아니며,

모델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이 사료에 기술되어있다고 합니다.

 

아서왕과 12명의 기사들은 둥그런 탁자에 앉아 회의를 했으므로,

그들을 원탁의 기사라고 부릅니다.

 

앉는 위치에 따른 상하의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위하여 원탁을 만든 것입니다.

여러 선진국들의 국무회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원탁에서 하고 있습니다.

각 국무위원들이 위아래 없이 평등한 상태에서

국사를 의논하기 위해 원탁에 앉는 것입니다.

대통령은(president) 회의를 진행(preside)하는 사람이지요.

 

 

우리나라 대기업의 회의실도 대부분 이렇게 돼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직 권위주의적 좌석 배치를 유지하는 곳도 아주 많습니다.

우선 위아래를 구별 못하는 조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봉사하는 단체의 식사 때, 봉사를 받는 분들이 윗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아랫자리에 앉히고, 헤드 테이블을 만들어,

시찰 나온 분들이나 단체 간부들이 앉는 것입니다.

 

어느 시민 모임이 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시민들은 먼지 나는 운동장 땡볕에 세워놓고,

무슨 기관장, 의원, 주최 측 간부들은 천막 친 단상에 앉아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좋은 일을 한 시민들을 표창하는데,

시상자가 단상에 서서 단 아래의 시민들을 내려다보며 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줘서, 단상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지도자의 집에 가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7-11)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이 아직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 곳곳에서 예수님이 보시면 눈살 찌푸릴 좌석 차지하기가 눈에 뜨입니다.

주최측이나 참석자들의 의식 부재에 따른 것이지만, 좌석 배치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상좌와 아랫자리가 안 생기도록 머리를 쓰면 될 터인데,

많은 경우 무의식 적으로, 또는 일부러 윗자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부터 고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당장, 레지오의 좌석 배치부터 바꾸고 싶은데,

좁은 장소에서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좀 넓은 데서 하는 경우, Pr. 이나 꾸리아의 좌석 배치를

원형으로 바꾸면 어떻습니까?

 

4간부가 헤드 테이블에 앉아 단원들을 마주보며,

또는 내려다보며 주회를 진행하는 우리의 모습부터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