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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72 연도 (煉禱  litany)


사내가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꽃을 꽂고,

돌아가신 이를 추모하고 돌아섰다.

귀가하려고 차를 향해 가던 중 한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는 신사를 보았다.

그 사람은 “왜 당신은 죽어야만 했나요 !” “왜 그리 일찍 죽었나요 !”

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사내가 다가가서 물었다.

‘성묘하시는데 죄송합니다만, 돌아가신 분이 누구이기에

 그리 슬퍼하십니까? 저는 선생님같이 원통해하는 분을 본 일이 없습니다.

 아드님? 따님? 사모님? 부모님이신가 보지요?’

그 신사는 한참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겨우 대답했다.

“제 마누라의 전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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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들의 장례에 가 보신 분들은, 빈소에서 판소리 비슷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옆방에서 음복을 하면서 들으면 그레고리안 성가 분위기와

타령조가 묘하게 뒤섞인 창(唱) 음률의 노래로 들린다.


이는 소속 성당의 교우들과 조문객들이 모여 앉아

곡조를 붙여 부르는 ‘위령의 기도’로, 흔히 ‘연도’라고 한다.

연도는 시편 129편과 50편, 성인 호칭 기도 및 찬미기도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우리나라 특유의 음률로 널리 노래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음률과 사라진 구어체 문장이

기독교 기도문과 절묘하게 합쳐진 것으로

기독교의 토착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가톨릭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세상을 떠난 이에게 위령기도(慰靈祈禱)를 바치는데,

한글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음을 붙여 입으로 외게 했다는 설이 있다.

초기에는 각 교구마다 연도문이 달라서 혼선을 빚기도 했으나,

2002년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로 통일되어 이제는 토착의 전례에서

공식적인 한국 천주교회 고유 예식서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연도는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로 간주되고 있지만

꼭 그러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연도책이라고 할 수 있는 한문본 천주성교예규(聖敎禮規)에서는

연도의 목적을 다음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첫째, 노래하는 소리 더욱 우리의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하게 하고,

          더욱 우리의 마음을 수렴케 하고, 더욱 우리 마음에 큰 바라는 마음을 드러냄이오.


둘째, 거룩한 노래의 소리만을 법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느니,

          대개 저 마귀는 항상 우수에 차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함이오.


셋째, 장사 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


연도의 내용은 시편의 참회 부분이며 구원을 요청하는 신앙고백이기에

연도는 남을 위해 바치기 이전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의 의미이다.

그래서 옛 구교우 신자들은 저녁기도 때 연도를 봉헌하였다.

 

둘째, 연도는 실제로 우리 안의 마귀의 유혹과

          세속의 헛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셋째, 연도를 통해 죽음으로 생기는 좌절과 슬픔과 근심을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규모가 큰 성당에서는 연도 팀을 만들어 정시마다 빈소에 모여 연도를 올린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연도는 자칫 쓸쓸해질 수 있는 장례식장 분위기를

차분하고 따뜻하게 해 주며, 유족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위로를 준다.


조문객들은 연도 중에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문 (분향, 절, 성수 뿌리기, 유족들과의 인사 등) 하면 된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