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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78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흔히 인용되고, 싸구려 액자에 넣어져 팔리기도 하는 글이다.

너무 쉬워서 훌쩍 스쳐가기 쉬운 문장이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이 명문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Saint Francis Of Assisi, 1181 또는 1182~1226)가 지은 ‘평화의 기도’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에 가톨릭교에서는 ‘하느님, 가난하고 겸손한 성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희에게 보여 주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성자를 따르게 하시고 .....’

라고 기도한다.

성 프란치스코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한 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다.


성인은 1182년(1181년 설도 있음)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 베드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요안나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장사일로 자주 프랑스를 다니던 베드로가 프로방스에서 요안나를 만나 결혼한 것이다.

아버지가 출장 중에 성인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프랑스를 좋아한 아버지가 귀가하여 프란치스코(프랑스인)로 바꾸었다.


프란치스코는 신분에 알맞은 교육을 받아 많은 지식을 가졌고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배웠다.

그는 매우 활달하여 동네 청년들의 우두머리였으며

돈을 낭비하는 등 방종한 생활을 했다.


기사로서 전장에 나간 그는 1202년 포로로 잡혔으나, 풀려나 귀향하였고,

중병을 앓았다.

병에서 회복한 뒤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기도에 열심하게 되었다.


어느 날 황폐한 성 다미아노 소성당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인도해 달라고

기도할 때, 큰 십자고상으로부터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 집에서 귀중품을 가져다 팔아서 그 성당에 내놓았다.

이를 안 아버지는 프란치스코를 좁은 방에 가두고 성당에 가서 그 돈을 찾아왔다.


그러나 프란치스코가 재산을 흩어 가난한 이들에게 주려는 뜻을 굽히지 않으므로

아버지는 프란치스코의 모든 재산권을 박탈했다.

프란치스코는 오히려 이 일을 크게 기뻐하며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아버지께 반납했다.


그는 이때부터 청빈을 귀하게 여겨, 재산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몸에는 단지 회색 의복 하나만을 걸치고 줄곧 가난하게 살았다.


성 프란치스코-02.jpg

 

 

 

1206년 성인은 구걸로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였고, 이어 성 베드로 성당과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 혹은 포르치운쿨라 성당을 수리하였다.

포르치운쿨라 성당은 아시시 아래쪽 움브리아 평원에 자리 잡고 있으며,

프란치스코가 시작한 운동(프란치스칸 운동)이 태동하는 자리가 된다.


그의 신앙 실천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진정한 형제들로서,

진정한 수도자로 살아가자는 의미에서였다.

 

1209년 그는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에 가서 교황을 알현하여

자신들의 수도회를 인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그들이 제출한 회칙의 생활양식이 너무나 이상적이며

엄격하다 하여 인가를 거절하였으나, 그날 밤 꿈속에 쓰러져가는 성 라테라노 대성당을

프란치스코가 어깨로 부축하여 세우는 것을 보고

그가 교회를 쇄신시킬 인재라는 것을 깨달아, 다음날 수도회를 정식 승인했다.


1211년 아시시의 명문 출신 글라라가 프란치스코의 제자가 되려고 찾아왔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 곁의 집 한 채를 글라라에게 주었다.

글라라의 가족들은 그녀를 데려가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급기야는 글라라의 여동생들과 어머니도 프란치스칸 운동에 참가했다.

훗날 글라라와 수녀들은 ‘가난한 자매들의 회’ (글라라회)의 수도자가 된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창설한 이 회는 반 봉쇄 수도회로, 프란치스칸 2회로 분류된다.

‘작은형제회’라 부르는 남자 수도회는 프란치스칸 1회라 부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가지면서도 그들과 같이 완전한 청빈 생활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위해 제3회를 설립하여, 재속(在俗) 중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지킬 수 있는 회칙을 세웠다.

이 회는 교황, 학자 등을 포함하여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많은 회원을 갖게 되었다.


1224년 8월 15일부터 9월 29일 사이 프란치스코가 라베르나 산에서 단식기도를 하던 중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입었던 다섯 상처가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똑같이 생겼다.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성흔(聖痕)이다.

(엘리야 총장의 회람편지, 토마스 첼라노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성 보나벤투라의 대전기 등)

그것은 큰 은혜임에 틀림없었으나, 옆구리 상처에서 쉴 새 없이 피가 스며 나오는

고통이 뒤따랐다.

이후 그는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눈이 반쯤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었다.


1225년 그는 ‘피조물의 찬가’ 또는 ‘태양의 찬가’ 란 노래를 지었다

이 ‘태양의 찬가’는 자연과의 일치를 통해 주님을 찬미하고 있으며

성인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영성의 진수라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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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님, 당신이 지으신 모든 창조물에게서 찬미 받으소서

특별히 형님인 태양에게서 찬미 받으소서

태양을 낮이 되게 하시어 저희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를 띠우나니

당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누님인 달과 별들에게서 찬미 받으소서

맑고 빛나고 사랑스럽게

하늘에 그들을 지으신 분은 당신이십니다.


형님인 바람을 통해 찬미 받으소서

공기와 구름과 맑고 고요한 날씨와

온갖 기후를 통해 찬미 받으소서

그들을 통해 당신은 손수 지으신 창조물들을 살피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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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 받으소서

아픔과 고난을 참아 받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 받으소서

당신을 바라보며 고요히 참아내는 이들은 복되오니

그들은 월계관을 받을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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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첫 종교시인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거듭 번역, 작곡되어

불러지고 연주되고 있다.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해질 무렵 프란치스코는 세상을 떠났다.

1228년 7월 16일 그는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성 조르지오 성당에 잠시 묻혔다가,

1230년에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1939년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아시시의 가난한 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를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馬丁>

Atachment
첨부 '1'
  • 김치순 2011.08.17 22:36

    수고 많이 하여 좋은 글을 많이 볼 수 있게 하여 정말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를 좀 달겠어요.

     평화의 기도와 태양의 노래를 이왕이면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재속 프란치스코 형제회에서 번역하여 쓰고 있는 대로 옮겼으면 하여 다음에 적어요. (좀 길더라도 참아 주시고)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님,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태양의 노래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여!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고,

    호올로 당신께만 드려져야 마땅하오니 지존이시여!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여이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햇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로 해 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지존하신 이여!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

    쓰임 많고 겸손되고 값지고도 조출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아리땁고 재롱 피고 힘 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함을 내 주여, 받으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 받으소서,

    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 받으소서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시로소이다.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을 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 당신의 더 없이 거룩한 뜻을 쫓는 자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를 기려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

    드릴지어다. 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어다.

     

    ** 평화의 기도는 비교적 근래에 손을 보아 요즘 교회의 용어로 되어 있으나 태양의 노래는 좀 오래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