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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79 생명의 탄생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나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어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언젠가 네가 물어볼 줄 알았다. 내가 자세히 말해 줄게.

 

엄마와 나는 야후의 ‘채팅 룸’에서 만났다. 우리는 e-mail 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사이버 카페에서 만났지. 내가 플로피 디스크를 보여줬더니

엄마는 내 하드 드라이브를 다운로드 하기로 했어.

한참 업로드를 진행하던 중에 우리는 둘 다 ‘방화벽’ (Firewall)을 안 친 걸 깨달은 거야.

‘삭제’ 키를 두드리려했지만 이미 늦었어. 열 달 뒤에 귀여운 팝 업(pop-up)이 뿅 나오더니

‘아들 왔어요’ (You've got Male!) 하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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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다.

39세에 첫 딸을 받은 것이다.

나는 둘째를 29세에 낳았고, 39세에 셋째이자 막내가 태어났다.

동갑인 마누라에게 39세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늦은 출산이었다.

요즈음에는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고, 따라서 첫 아기를 안는 타이밍도 많이 늦춰졌지만,

그래도 39세의 새내기 아빠는 몹시 감격스러울 것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면서도 새 애기가 나오면 거의 모두가 ‘축하’를 해 준다.

‘개똥밭을 구르더라도’ 세상에 나오는 것은 축하받을만한 일인가 보다.

 

가톨릭에서의 생명은 두 남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하느님의 구원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탄생시킨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각 인간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잘 보존하고,

살아가는 목적인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 생존권을 갖는다.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생명은 법률에서의 생명과 차이가 있다.

법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신노출 또는 독립호흡을 출생으로 규정한다.

가톨릭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그 순간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영혼이 불어 넣어지며

수정란을 이룬 순간부터 하나의 고귀한 생명이자 인격체로 간주한다.

 

육체는 아주 작고 미숙하지만 그 영혼은 완전히 성숙한,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빛이다.

당연히, 임신중절이란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 그 자체는 인간들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없다.

또한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개체로서 그 존엄성을 가진다.

이 존엄성에 대한 침해, 즉 생명의 파괴는 하느님의 권위에 대한 침해이다.

각 개인은 자신이나 남의 생명을 파괴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생명에 대한 파괴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더 많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적 강제에 의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 즉 살해되는 행위이다.

살인, 자살, 사형, 낙태, 안락사, 전쟁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생명파괴 요인들도 속속 등장한다.

굶주림, 공해, 산업재해, 빈곤 등이 근자에 횡행하는 침해 요인들이며,

가톨릭은 이들 요인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다.

 

 

하느님은 생명을 주면서 ‘재능’(talent)을 함께 주신다.

‘굼벵이도 구는 재주가 있다.’고, 아무런 재능 없이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다.

이 재능은 그 사람이 세상을 살며 맡은 역할, 세상에 나온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이나 목적을 알기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재능은 ‘혼자 잘 쓰라고’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눠 쓰라고’ 주셨다는 것이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