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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60 피정(避靜 Retreat) 


한 사내가 한식에 성묘를 갔다.

부모 묘소에 꽃을 바치고 부모님을 회상하며 절을 했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다 보니 한 사나이가 어느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사내는 애간장이 끊어지게 울면서 부르짖었다.

“당신은 어쩌다 그리 일찍 돌아가셨습니까!”


첫 번째 사내가 물었다.

‘그렇게 슬피 우시는 걸 보니 부모님 묘소인가 보군요.’

두 번째 사나이가 울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아드님이나 따님이 앞섰나 보네요.’

“아니요.”

‘그럼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리도 슬퍼하시나요?’


“네, 제 마누라의 전 남편이랍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대목이 적지 않다.

한국어가 분명한데 형용사, 부사가 어디에 걸친 건지 모를 것들도 있고,

처음 보는 생경한 어휘도 적지 않다.

가톨릭에서는, 옛날에는 썼으나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법을 많이 바꾸고 있지만,

아직도 고칠 곳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어떤 때는 영어 성경을 펴 보고 “아, 그게 이 소리였구나”하고 쉽사리 이해하기도 한다.


아무리 애써도 납득이 안 되고, 그래서 다가갈 수 없었던 어휘의 하나가 피정(避靜)이다.

피할 피(避) 자에 어떤 글자를 붙이면 당연히 ‘붙은 글자’를 피하는 것으로 배워왔으므로,

피정의 상식적 해석인 '고요함을(靜) 피한다'라는 게 무슨 뜻인가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피난(避亂)은 난리를 피하는 것이요, 피서(避暑)는 더위를 피하고,

피뢰(避雷)는 벼락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내 집 사람은 ‘세상을 피하여(避世)’ ‘고요한 곳(靜)’을 찾는다는

두 문장의 첫 글자를 따 온 것이 ‘피정’이니,

‘이해 못 하는 사람’을 이해 못 하겠단다.


뭐, 따져서 좋을 일 없고, 이미 피정이란 단어가 입에 붙었으니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것이고, 다만 ‘천주교 용어 개선위원’ 같은 분들이 있으면

내 의견도 참조하시면 좋겠다.


피정을 영어로는 Retreat 이라고 한다.

‘후퇴’ ‘퇴각’ ‘철수’ 라는 ‘군사 용어’ 비슷한 말이고,

영영사전에는 ‘to move back or away from the enemy or retire after defeat‘

즉 ‘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패전 후 퇴각하는 것’ 이라고 돼 있다.


가톨릭에서의 피정은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성찰기도 등 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남을 말한다.

피세정념(避世靜念), 피세정령(避世靜靈), 피소정념(避騷靜念), 피세정수(避世靜修)등의

4자성어에서 두 글자를 딴 것이다.


가독교의 피정은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했던 일을

제자들이 본뜬 데 기원한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ST. 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영신 수련’ (Exercitia spiritualia) 이라는 저서에서 피정의 방법을 발전시켰고,

교황 비오(Pius) 11세(재위 : 1922-1939)는 그를 피정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였다.

17세기에는 피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동안 머무르며

지도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생겨났다.


19세기 초 부터는 성직자들을 위한 연례피정이 실시되었고,

현재는 교회법상으로 성직자들은 3년에 한 차례씩,

수도자들은 최소한 1년에 한차례씩 피정에 참가하게 되어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적극적인 신앙생활,

개인적인 신앙체험 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피정은 평신도들에게 더욱 많이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피정에 참가하고 있다.


피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단체로 하는 피정도 있고,

가족 단위의 피정도 있고, 혼자서 하는 피정, 강의를 들으며 하는 피정도 있고,

전 과정 동안 전혀 말을 하지 않으며 묵상만 하는 힘든 피정도 있다.


단체피정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통하여 하는 것이 보통이며,

개인 피정은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묵상과 기도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 면담식 피정은, 사제 등 영적 지도자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분석함으로서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식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나갈 수 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피정은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행하여지나,

전국 각지에 있는 ‘피정의 집’ 들이 이용하기에 좋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번잡하고 어수선한 일상을 잠시 떠나

조용한 곳이나, 분위기 있는 곳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피정의집은 가톨릭만을 위한 곳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다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가톨릭이기 때문에,

강의 등이 가톨릭 위주로 진행되므로, 이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는

무종교자나 타교 신자들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잠깐이라도 떠나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묵상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값진 시간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생활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나 위주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로 찾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삶의 악센트다.


<馬丁>


  • 月雲구달 2011.04.11 14:28

    馬丁,
    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回甲을 축하드리네.
    부디 百壽 이루기를 기대하네.
    구달

  • 한기호 2011.04.11 18:24

    고맙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 김준기 2011.04.14 05:51

    아! 그렇군.


    피정이라고 하여 고요함을 피한다는 뜻인것 같아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알게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