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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64

성녀 파우스티나와 자비 주간


내가 다니는 분당 마태오 성당의 신부가 지난 일요일(2011. 5. 1.)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 나가서 만나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천원, 2천원씩을 주라고.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일원이며, 구걸이 기업화됐던,

그런 배경은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주라는 것이다.

‘일주일간 적어도 세 사람에 주어라,

 만일 걸인을 못 만나면 그 돈을 자선단체에 보내라.‘

돈을 주라는 말의 목적은 ‘자선을 생활화’ 하라는 뜻이다.

특히 이번 주일, 즉 부활절 다음 첫째 주일이

‘자비 주일-慈悲週日’ 이기 때문에 이날 그런 당부를 한 것이다.


자비 주일은 예수가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환시로 나타나

부활 제 2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지내도록 하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환시에서 예수는 이 날이(Mercy Sunday) 모든 이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기를 바라며,

생명의 샘으로 다가오는 모든 영혼은

죄와 형벌에서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Maria Faustina Kowalska)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 우지의 서쪽에 있는

글로고비에츠(Glogowiec)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집안의 10명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하고 배운 것은 없었지만

신심이 깊고 올곧은 사람들로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순명, 부지런함에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3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파우스티나는 12세 때 고향을 떠나 부유한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후 1925년 8월 1일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1928년 마리아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라는 수도명으로

첫 서약을 하고, 조리사 정원사 문지기 등으로 일했다.


"누더기를 입고 모자도 쓰지 않고 맨발인 초라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장대비가 내리고 있어 그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는 더운 음식을 좀 달라고 했다. 약간의 스프를 데우고,

 거기에 빵을 조금 넣어주었다. 그는 잘 먹었다.

 빈 그릇을 가지러 갔을 때 그는 자신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고

 알려 주고 사라졌다. 갑자기 내 영혼은 이런 말을 들었다.

 '내 딸아, 이 문을 지나면서 내게 축복을 구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순종에 이끌리는 너의 자비로움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자비의 열매를 맛보러 왔느니라'"

그녀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그녀는 많은 환시와 예언, 그리고 영적 은총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박해를 받았다.

1931년 2월 22일 환시에 나타난 예수는

성심에서 붉은 색과 흰 색의 두 갈래 빛이 나왔고,

그 환시를 그림으로 그려서, 그림을 보고 공경하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성녀 파우스티나-05.jpg

 


1934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6시 10분,

파우스티나와 몇몇 학생들이 저녁 식사하러 정원을 지날 때,

성당 위에 예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 그분을 뵈었을 때와 같은 모습, 즉 상본의 모습이었다.

가슴에서 두 줄기 빛이 발했는데, 성당과 부속건물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다 비추고 있었다. 그 발현은 4분 가량 계속되었다.


조금 떨어져 걸어가던 이멜다 수녀도 그 빛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멜다는 그 빛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그 신기한 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곧이듣지 않고,

상상이거나 비행기가 지나가는 빛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이멜다 수녀가 그 빛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1934년 11월 28일 파우스티나는 장상 수녀에게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이따 수녀가 파우스티나가 말한 바를 기록했고

파우스티나, 따이따 수녀 및 이멜다 수녀가 서명을 한 뒤

빌니우스 수녀원의 원장 이레네오 끄쥐자노프스까 수녀가 이를 확인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와의 교감을 모두 일기로 기록했는데,

그 일기는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일기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세상에 일깨우고

신심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말이나 행동이나 기도로써

매일 한 가지 이상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여러 질병으로 요양원에서 생명이 끝나갈 무렵의 일기이다.

"어떤 사람이 나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내게 알려 주신 것은 특별한 일이다!

 이런 일은 특별히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언젠가 나는 한 오막살이에 있었는데,

 그 곳에는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한 노인이 있었다.

 침대 주위에는 많은 마귀들과 눈물을 흘리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내가 기도를 시작하자 마귀들은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노인은 믿음에 가득 차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내 방에 있었다."


성녀는 영안의 눈으로 미래를 보게 되었는데,

“오랜 전쟁으로 유럽이 초토화된 장면”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1938년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3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4월 30일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성녀로 시성하면서

부활 제 2주일을 자비 주일로 선포했다.


<馬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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