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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33 가톨릭과 제사 (祭祀)

추석과 음력설이 되면 우리 교회의 신부는 명절 전 전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신자들에게 흰 종이를 나누어 준다.
신자들은 그 종이에 돌아가신 조상 형제들의 이름을 적어서,  
다음 주 일요일, 즉 명절 전 일요일 미사 때 과일, 음식과 함께 들고 온다.

미사의 마지막 순서에 신자들은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제단 아래 식탁에 올려놓고,
준비한 지방(紙榜)을 들고 나가 제단에 설치된 칠판에 붙인다.
그리고는 칠판에 붙여진 조상, 먼저 간 형제들을 위하여 합동으로 제사를 드린다.
이것이 매년 거행되는 우리 교회의 제사 - 차례 의식이다.

나는 분당 마태오 성당의 영어미사에 참례하므로, 이 미사에는 외국인들이 많다.
그들도 똑같이 지방을 만들어 와 붙이고, 함께 기도하고 그들 조상의 명복을 빌면서
아주 흐뭇해한다.

차례와 미사가 끝나면 모두 둘러앉아 과일과 음식을 함께 먹는다.
우리의 명절을 우리 정서에 맞게 치러주고, 더욱 뜻 깊게 해 주는 외국인 신부에게
나는 존경을 금하지 못한다.

가톨릭에서 제사를 허용할 것이냐, 금지할 것이냐는 문제는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에 파견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년)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중국에 전하고자 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가 유교를 보완해서 더욱 완벽하게 해준다는 보유론(補儒論)을
선교신학으로 제시하고, 중국의 제천의식(祭天儀式), 공자숭배, 조상숭배 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1632년 이후 중국에 도착한 설교자회(도미니코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파리 외방 전교회 등 선교단체들은 조상숭배 등은 우상숭배이며, 교리에 어긋나는
이단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들의 반론에 따라 중국에서는 신학적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로마 교황청은 1715년의 교령을 통해서 조상제사 등 중국 전례를 금지시켰지만,
예수회가 반론을 제기하자 제사를 다시 허용했다.
그러나 도미니코회 등의 재반론 결과, 교황청은 1742년에 새로운 회칙을 반포하여
조상제사를 미신으로 규정하며,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전개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세워진 1784년 당시 제사는 금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들여온 이들은 마테오 리치 등의 저술을 통해서
신앙에 접근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제사를 지냈다.

1789년경 교회 지도자들은 최신판 천주교 서적을 탐독하던 과정에서
천주교에서는 조상제사를 금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황한 이들은 베이징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윤유일(尹有一) 등을 파견하여
천주교 서적 자체 안에서 드러나는 상위점에 관해 문의했다.
윤유일은 제사가 “죽은 이를 섬기기를 산 이와 같이 한다.”[事死如事生]는 일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구베아 주교는 1742년에 결정된 교황청의 지침에 따라 조상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천명했다.

제사 금지령은 양반사족 출신 신도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고,
상당수가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다. 제사의 포기는 곧 효도를 포기하는 행위이고,
효행을 충성보다 소중히 여기던 양반으로서는 그 명망과 특권을 버리고,
가문을 존립시키는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제사를 안 지내는 천주교 신자들은 불효막심한 존재로 규탄되었고,
제사금지령은 교회에 대한 탄압정책을 표면화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교황청은 1939년 제사 문제를 다시 검토해서 이를 허용했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교회의 이해도 심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제사가 가진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고,
이를 용인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1995년에 발효된 한국 천주교회의 지역교회법인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서는
제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제134조 1항).

<馬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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