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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20 기도(祈禱)

한 소년이 자동차를 갖고 싶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게 차를 한 대 주세요.”
기도를 마치자마자 소년은 창문으로 뛰어가 마당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소년은 다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차 한 대만 내려 보내 주세요.”
이번에도 하느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다.

소년은 거실로 뛰어 나가 벽난로 위에 모셔 둔 성모상을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백지로 싸고 또 싸고, 테이프 둘둘 묶은 다음, 옷 장 맨 아래 서랍에 집어넣더니,
또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느님,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으시면 ......”



기독교를 믿는데서 가장 어려운 부분의 하나가 기도이다.
남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기도를 하랄 때는 정말 죽을 맛이다.
돌려가며 기도하라고 할 때, 그렇게 하라고 할 것이 틀림없을 때,
겨우 한 마디 기도꺼리를 장만하고는, 남이 그 걸 먼저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기 일쑤다.

언제 어디서나 쿡 쑤시면 좔좔좔좔 수돗물 튼 것처럼 유창하게 기도를 쏟아내는 분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평소의 말솜씨가 어눌하던 분이 기도에 있어서는 갑자기 달변으로 돌변하는 모습도 경이롭다. 정말 ‘성령이 임하시어’ 그렇게 되는가 보다.

어떤 이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한다. 기도만능주의이다.
다른 편에서는 기도를 안 드리더라도 하느님께서 다 아시고, 알아서 해 주실 터인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기도무용론자들이다.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이 두 기둥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면 과연 기도란 무엇일까?
신앙에 대해서 앞서 갔다는 이들의 정의를 들어보자.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인 :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

에바그리오 폰티코 :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상승.

아우구스티노 성인 : 애정을 다하여 하느님을 쳐다보는 행위.

복자 샤를 드 푸코 :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으로 예수님 앞에 있는 것.

오리게네스 : 하느님 현존의 인식이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이며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

토마스 그린 : 기도는 대화이다. 이는 사랑 안에서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 기도 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는 최고의 선이며,
                                 하느님과 나의 친밀한 일치이다.

그레고리오 성인 : 하느님과 나의 친밀함.

데레사 성녀 : 묵상기도는 자기가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느님과 단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며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

윗분들의 정의를 요악하면, 흔히 하기 쉬운 ‘이거 해 주세요’ ‘저거 주세요’ 보다는,
기도하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좀 더 쉬운 설명도 있다.

- 갓난아기는 엄마의 젖을 달라, 잠 재워달라고 보채지만, 세월이 흘러 말을 하게 되면
   어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고, 이해하고, 결국은 어머니의 표정만 바라보아도
   그 생각을 알아차리게 되고, 어느 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닮게 되는 것이다.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로, 초보자는 정해진 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거나,
    무엇을 해 달라고 주문만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이 말을 할 뿐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충실하게 기도생활에 정진하다 보면, 기도란 단순히 내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순간임을 알게 된다. 무엇을 말씀드려야 하는지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점점 더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는 전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보다 더 자신을 잘 드러내 보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사랑과 뜻에 동화되어 간다.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등산을 생각한다.
힘들다고, 중턱에서 내려간 사람은 정상에서의 아름다운 뷰를 알 수 없다.
올라가는 단계 단계마다 펼쳐지는 풍경은 다른 것이다.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이고, 중간에 내려온 사람은 실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것,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馬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