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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당-01-01.jpg

                                                        <수백당-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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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백당을 설계한 건축가입니다.

20년 전, 산을 배경으로 하고 남녘의 풍광이 펼쳐지는 땅 위에

이 집을 그렸을 때 특별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목적이 없는 방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옛 집에는 목적을 가진 방이 없었습니다.

위치에 따라 안방, 건넌 방, 문간방으로만 불렀지요..

이 방들은 식탁을 놓으면 식당이 되고,

요를 깔면 침실, 서탁을 설치하면 공부방,

담요를 깔면 화툿방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 방의 목적은 수시로 변했던 게,

지난 70년대에 불어 닥친 서양주택의 영향으로

침실에는 침대가 놓이고 식당에는 식탁이 늘 점거하여

우리의 삶을 목적적으로 바꾸며

우리의 공간관념도 기능적으로 변환시켰던 것입니다.

 

  이 전통적 공간관념을 회복하여

도시를 벗어나 보다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부부를 위해

목적이 없는 방 12개를 구성하는 일이 목표였습니다.

그것도 5개만 지붕이 있고 나머지는 위가 열려있습니다.

때로는 식당일 수 밖에 없고 욕실일 수 밖에 없지만

그 목적 아니고도 그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인접한 방들과 접속을 긴밀하게 했지요.

방과 방 사이는 때로는 물로 채우고

때로는 꽃으로 채우지만

어떤 곳은 그냥 비어져만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감싸는 재료와 물성도 희게 하여 비웠습니다.

 

자칫하면 건조해지기 쉬운 이 주거공간에서,

공직에서 은퇴한 바깥주인과 미술을 전공한 안주인은,

이 공간에 담기는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대단히 풍요로운 일상을 일구며 거주할 것을 믿었고

수백당이라는 당호까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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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201811

 

      

현초와 이내의 守白堂 이야기()

조용국 아오스딩

 

수백당은 우리 집의 당호이다.

수백당을 지을 때 이곳에 살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 년 반 남짓 이곳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고,

그 후 두 번이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으로 오려고 하였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비로소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인 노년의 여정을 가고 있다.

 

  수백당-02-01.jpg

                                       <수백당-02>

 

눈을 들어 북한강 쪽을 내려다 보면 강 건너 매곡산, 중미산,

중미산 왼쪽 자락 너머로 유명산, 용문산이 아스라이 바라다보이고

왼편으로 고동산과 야트막한 야산이,

오른편으로 월산이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바라다보인다.

 

용문산 쪽에서부터 산등성이가 옅은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해가 떠오르면 산골짝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무 가지들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지난해 이곳으로 왔을 때 소화데레사와 나는

추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차츰 추위에 적응하면서

영하 20°C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도 견뎌내었고

이곳에 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수백당을 짓고 난 후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 어떤 분은

집이 미술관 같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수도원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도 하였는데, 현재 우리의 삶이 마치 수도자의 삶을 사는 것 같다.

 

일하고, 기도하고, 성경과 읽고 싶은 책 읽고, 묵상하는 삶.

 

    

수백당-03-01.jpg                                                                    <수백당-03>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많은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TV마저 원하는 사람한테 주고 왔는데 그렇게 한 것이 아마도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따금 모든 상념을 내려놓고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울 아파트에 살 때보다 추위 때문에 어려움은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지난번 함박눈이 내렸을 때 귀경할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날이 좀 풀린 뒤 산의 나무들마다 만개한 서리꽃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경이었다.

 

 

가끔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본다.

내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으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계절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까?

오랜만에 좋아하는 드볼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어 본다.

볼륨을 높여도 누가 시비 걸 사람이 없어서 좋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냇물, 폭풍이 몰아치고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이는 들판, 또 다시 조용히 흐르는 강...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을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딱히 떠나온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고

추억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 나에게 가슴이 미어지게 밀려드는

사무치는 그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이 생의 삶을 위해 떠나온 고향,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할 본향에 대한 향수가 아닐런지.

 

 

    백자토 - 최이숙 56cm x 30 cm-01.jpg

                                     <백자토 - 최이숙 56cm x 30 cm>

  

  

새벽에 잠을 깨니 소화데레사가 내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있은 듯

웃으며 기쁘게 살다 갑시다한다.

나는 말 없이 웃으며 팔을 뻗어

소화데레사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201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