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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나누기릴레이 해요.

 

참으로 무더운 여름들 보내시지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우리 연배들은 힘겹게 낮 밤을 보내는 요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거의 벌거벗고, 선풍기 틀어놓고 지내지만,

아직 에어컨은 한 번도 안 틀었습니다.

어제 몇몇이 모여서 점심 먹고 한담하는데, 대부분 에어컨을 안 켠다더군요.

애들이 그걸 알고 하루 종일 틀어도 한 달에 10만원 더 내면 되는데,

제발 시원하게 좀 지내세요.’ 전화한다는 집도 있었습니다.

에어컨 가동 여부도 세대 구분의 한 기준이 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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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단 둘이 선풍기 돌리고 앉았기 뭐하면,

슈퍼마켓에 가서 공짜로 주는 샘플 먹거리들 찍어 먹고,

손가락만한 플라스틱 잔에 포도주나 맥주도 얻어 마시고,

가전 코너에 들려 바람 안 나오는 에어컨 바람도 쏘이고,

거실 벽 만 한 화면의 TV , 손바닥 크기 태블렛 PC 구경하며

한나절 보내는 게 가장 만만한 피서인데,

우리 동네 몇몇 슈퍼에서는 안 받던 주차비를 받기 시작한 걸 보니

우리 같은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꽤 있나 봐요.

 

그래, 더러워서 공짜 냉방 안 쏘일 테야.’

오기가 발동하면 두당 4천원 내고 영화관엘 갑니다.

역쉬 돈을 내니까 얼마나 서비스가 좋은지 찬바람이 쌩쌩 나와서,

맨발에 반바지 차림으로 갔다가는 동상 걸리기 꼭 좋습니다.

 

여러 편 본 중에서 이 칼럼에 어울리는 영화로는

나의 산티아고가 있습니다.

독일의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의 베스트 셀러

나는 길에 있었네 - Ich bin dann mal weg.’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8Km 여정을

에피소드와 아름다운 화면,

곱씹어 보게 하는 단순한 일기장으로 버무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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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 곧바로 나도 떠나고 싶다.’

강렬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꼭 한 번 걷고 싶은 길인데,

석 달째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처지에 있으니

더욱 욕망이 솟구치더군요.

 

더위를 식혀 주려는지 마음을 가라앉혀 주려는지,

집사람이 잽싸게 찬 물을 끼얹습니다.

뭐야, 고생도 하나도 안 하고, 하느님 만나는 장면도 없고...”

환상이 깨진 제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지요.

하느님이 이런 영화에 출연하시겠냐!’

 

성이 덜 차서 이용호 바오로 신부의 산티아고 순례기

나는 가야만 한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왜들 거길 갔는지, 여러 순례기의 요체를 찾아 봤습니다.

나를 찾아서’ ‘내면의 나를 만나러’ ‘하느님을 만나러’ ‘아픈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혹시 나도 다녀왔어재려고?

 

사람 사는 방법이 현재 70억 가지랍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70억이니까.

마찬가지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가는 목적, 가서 얻은 것들 등도

거기 간 사람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겠고,

남들과 같아야할 필요도 전혀 없겠지요.

 

스페인 갈 형편이 안 되니

이 참에 가까운 성지들이나 찾아볼까.

어디 간들 나를 못 찾겠으며’ ‘하느님을 못 만나겠나?

 

이 또한 더위를 지내는 좋은 방법 아닐까요?

사시는 동네에서 가까운 데부터...

 

형제, 자매님들

어떤 여름을 보내고 계십니까?

묵상(黙想) 나누기는 다른 데서 하시고,

여기서 우리 단상(斷想) 나누기 릴레이해요.

2편의 빠른 등단을 기대합니다.

 

<한기호 마르띠노>

 

  • 中昰 2016.08.03 17:42
    마정 글을 읽다가 보니 어느새
    맘에 절로 시원끼가 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