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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왜 하십니까?’

젊고 잘 생기고 체격 좋은 신부가 멋진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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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당진군 합덕읍 신리 성지 - 한반도 호수>

 

 

성지순례를 왜 하냐구?”

나는 왜 성지를 왔지?”

신부와 눈이 마주쳐서 대답을 요청받을까 걱정하면서 재빨리 생각을 돌렸다.

 

“‘왜 그들은 죽었을까?’ 라는 의문의 답을 찾아서.....

       과연 그들이 목숨을 기꺼이 바칠만한 신앙이 있었을까?

      그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처럼 성경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교리에 빠삭하지도 않았을 그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단순한 믿음이 깊은 믿음이어서?,

     성경이나 교리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믿음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에서는 왜 그리 성경과 교리를

     열심히 강조하는 것일까?”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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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프랑스에서 온 삼종>

    

 

아무도 대답 안 해요?’

신리 성지의 주임신부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그쳤다.

모두들 신부의 시선을 피해 마룻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레지오에서 오셨으니까 잘 들 아시겠지요?

   레지오 하신지 얼마나 들 되셨습니까?

   1년 되신 분?’

아무도 손들지 않았음을 안 보고도 안다.

 

‘3? 5? 10? 아직도 손 안 드신 분은 뭐예요?

   저 뒤 형제님, 몇 년 되셨습니까?’

“29년 됐습니다.”

29년을 개근하신 형님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29년이요? 대단하십니다. 그래, 왜 성지를 찾아오셨습니까?’

성인들이 순교한 현장에서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본받아 보려고...”

역쉬 나이 드신 선배님이 잘 알고 계시네요!’

 

이어서 신부는 몇 사람에게 더 물어보더니

오늘 점심 어디서 드세요?’

아산만에 형제님이 운영하는 횟집 예약했습니다.”

단장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 그 집. 나는 어제도 거기서 먹었는데 생선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에 정답을 못 맞히면 맞힐 때까지 놔 드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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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손자선 생가 겸 다블뤼 주교관>

  

 

생선회와 소주에 눈이 어두워 몇몇이 정답에 도전했다.

믿음의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성지에 흐르는 영기(靈氣)를 받으려고...”

 

, 그렇죠. 그러나 그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다시 몇 명이 자기 의견을 말했으나 좀처럼 신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맨 앞에 앉았으므로 뒷자리 형제들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밥 때를 놓칠까봐 초조해하는 단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 하는 거 아냐?”

단원들이 모두 내 목덜미만 쳐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람마다 다 생각이나 목적이 다를 터인데,

   어찌 한 가지 정답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획일화 시키려하십니까?”

 

말문을 열려는 유혹과,

참아야지, 참자.”

틀림없이 좋은 날 왜 또 분란을 일으켰느냐고 할

마누라의 질책에 대한 두려움이 팽팽히 맞섰다.

 

에라, 젊은 신부, 한 번 해 보자!”

드디어 마루에 박았던 시선을 끌어올려 정면 제단을 향했다.

눈만 마주치면 바로 기관총알이 튀어나갈 각오로.

사제의 위엄을 업고 반박하면,

로켓포로 응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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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 - 성령과 소녀>

 

순간 신부가 입을 열었다.

제 고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에서 오셨는데

   어찌 제가 점심을 굶길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봐드려서, 제가 정답으로 강론을 대신하겠습니다.’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한 대만 더 때리면 마주 때리고 퇴교하고 말테다.”

하는 순간 매를 멈추던 교관들의 절묘한 타이밍이 떠올랐다.

, 이 분은 큰 성직자의 자질을 타고 났구나!”

 

여러분 말씀이 다 정답이었습니다.

   그러나 2 % 부족한 것은

   모든 정답의 가운데에 하느님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순교자의 믿음도, 믿음의 선배도, 영기도

   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성지순례에서 이를 깨닫고,

   레지오의 중심에도 하느님을 모시고

   기도와 봉사활동에서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시라고

   제가 어르신들을 괴롭혔습니다.’

 

깊은 뜻을 쉬운 표현으로, 물 흘리는 듯한 강론에서,

신리 성지 8천 평 잔디를, 관리장이나 사무장 없이

수녀 두 분과 함께 만들고 가꾸는

김동겸 베드로 신부의 내공이 가림 없이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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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횟집에서 내다 본 아산만>

 

아산만을 내려다보며 먹는 생선회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그러나 내 입속에서는

왜 성지순례를 왔는가?”

평신도들에게 목숨을 내놓게 한 그 믿음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씹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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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옥우 가톨릭 형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안 오른 동기를 아시는 분은 제게 연락해 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강우일강탁강충식강홍빈권길상김원김경길김권택김대성김상열김용진김유영김진균

김치순김해강김헌영박효민봉관명손욱송인경안녹영안동준유명진윤구복윤석정윤석훈

이국이관재이기국이삼재이상우이익치이재수이충구이충호이태극임승택장준태정방언

정태건정학철조맹기조삼현조용국최황최동호최성락최중균한기호한부영홍국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