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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실천하지 않는 가톨릭에게는 더 혹독한 심판이.

2015. 7. 7.

 

 

어떤 일을 추진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허탈감의 크기는

그 일에 쏟아 부은 노력과 투자의 크기에 비례할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내가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행동할 때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베풀었던 애정과 투자가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섭섭함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하신 일이 있습니다.

 

20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태오 11,20-24)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시어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복음 말씀을 전해주신 마을들입니다.

‘티로’와 ‘시돈’은 지중해에 가까이 있던 도시들로서

무역으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그 사치스러움과 넘치는 사악함으로

결국 멸망하였고, 소돔 또한 철저한 심판을 받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공을 들인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에 대해서

티로, 시돈, 소돔보다 더 나쁘다고 질책하십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듣고 알고 믿는다는 가톨릭이

복음을 실천하지 않으면, 비신자들보다 더 혹독한 심판을

받으리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수많은 은총을 잊어버리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의미를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심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가톨릭 본연의 마음으로

복음을 행동하는 가톨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