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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2015. 3. 3.

 

 

사냥개들이 여우를 쫓을 때 이야기입니다.

한참을 추격하다가 그만 여우를 놓쳤습니다.

대부분의 개들은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몇 마리만은 단념하지 않고 끝까지 수색을 계속합니다.

 

왜 중도 포기하는 개들과 초지일관하는 개들로 갈라설까요?

전자들은 여우를 보지 못하고 그냥 앞 선 개들을 따라간 무리라서

과연 여우가 있기는 했나 믿음이 없는 것이고,

후자들은 당초에 여우를 본 개들이므로

결국은 다시 찾으리라는 신념을 갖고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증거를 보아야 믿는 사람도 있고,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믿는 사람이 있고,

말씀을 듣거나, 믿는 사람을 보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는 초기 기독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 코린토 1,22-24)

 

 

유다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미 많은 표징들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라면 당연히 홍해를 가른다든지,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유다인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한편 ‘다른 민족’이라고 표현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철학적 바탕에 따른 논리적 설명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하느님 나라를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유다인 같거나, 그리스인들 즉 비유다인들과 비슷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세례를 받은 뒤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노력이 밖으로 나타나야 하고,

단체로서는 함께 하고 싶은 좋은 형제 모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