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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습관, 버리고 싶은 성격’을 철저히 죽이기

2015. 4. 7.

 



소설에는 변장을 하거나, 사고로 얼굴 모양이 달라져서

가까운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얘기들이 가끔 나옵니다.

마치 ‘보는 것’이 인지(認知)의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치부하고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시각(視覺) 이외에도 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감각이 있고

이러한 5감(五感)을 벗어나 직관적으로 느끼는 육감(六感)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정형수술을 하거나 변장을 한다고 해서

가까운 사람이 몰라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5 ---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30 --- 식탁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 24,)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어’ 못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하도록 놔둠으로서

그들의 믿음을 보려고 그러셨다는 해설도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3 제자들이 --- 고기 잡으러 갔으나 ---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요한 21,)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몰라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마르코 16,12)

는 기록도 있어서, 감각으로 알 수 없는 다른 모습이 되셨던 것도 같습니다.

 

저는 이 말씀들이 부활한 뒤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서 용서 받습니다.

죄를 지은 우리는 죄와 함께 죽고, 새로운 우리로 부활하는 것이지요.

부활한 우리가 전의 모습과 같다면 그것은 죽지도 않고

새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저 사람, 완전히 달라졌네’ 소리를 들어야만 부활한 것입니다.

 

나쁜 습관, 버리고 싶은 성격을 철저히 죽여서 참 부활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우선 가장 나쁜 것 하나만 찍어 없애서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노력을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