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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없애는 길은 예수님의 동승(同乘)을 믿는 것.

2015. 6. 16.

 

 

두려움은 무지(無知)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불경기가 계속되어서 회사 경영이 나빠지면 인원을 감축할 것이고,

그 때 자신이 살아남을 것인지 쫓겨날 것인지 모르니까 두려워집니다.

퇴사 당하더라도 오히려 더 잘 되는 경우가 있는데도

앞날을 알 수가 없으므로 잘릴까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깜깜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이, 바로 밑 발부리를 모르고

앞길에 절벽이 있는지 맹수가 기다리는지 몰라서 겁이 납니다.

모두가 다 앞으로 닥칠 일들을 몰라서 생기는 공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은 불신(不信)에서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호수 저 쪽으로 건너갈 때,

37 --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코 4,)

 

 

 

제자들은 배가 침몰하여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합니다.

아니, 예수님이 함께 계신데 설마 배가 빠져서 죽기야 하겠습니까?

또,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은들 무엇이 겁난단 말입니까?

오늘의 가톨릭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전혀 공포에 싸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단속적 (斷續的)으로 크고 작은 돌풍을 만납니다.

비바람을 겪으면서 용케 한 세상 잘 보내고 은퇴해도 걱정은 이어집니다.

요즈음은 다 커서 어른이 된 자식들은 물론, 손자들도 A/S 해야 한답니다.

이래저래 걱정이란 우리와 늘 함께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배에 동승하고 계신 걸 잊고 삽니다.

 

부끄러운 현상이지만, 두려움이 커지면 기도의 세기가 커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클수록 두려움은 작아집니다.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모르는 앞날을 밝혀달라고 열렬히 기도하기보다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

걱정 두려움 공포를 없애는 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