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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에서 희망에 이르는 네 계단

2015. 6. 30.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왕에 일은 벌어진 것이니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다음 행보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바로 다시 시도하거나 새로운 일에 금세 도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할 것이라는 바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러한 바람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험에 실패한 뒤 ‘아, 거기만 주의했으면 합격할 수 있었는데.’

하고 곧바로 재시험을 봐서 합격하기는 어렵습니다.

차분히 돌아보고, 철저히 준비하여 다음 기회를 맞아야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바람’이 그리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

 

환난을 넘어서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인내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시험을 통과한 참을성으로 난관을 겪어내면

인내의 열매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그 경험이 쌓여서 수양이 됩니다.

그리고 수양이 온전히 내 것으로 체질화 되어야

비로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희망’을 가져 본 사람은 인내하기 쉽습니다.

인내가 수양이 되고 다시 희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환난마저 자랑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좋은 쇠를 만들려면 뜨거운 불에 달궈서 두드리고

물에 식혀서 다시 달궈 두드리기를 많이 반복해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아주 빨리 품어 오지 않았나요?

하느님께서는 환난에서 희망에 이르는 네 계단을

얼마나 착실하게 밟아 왔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참 희망을 주고, 그 바람을 실현시켜 주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