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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와 나눔이 ‘주님 안에서 자랑’ 하는 것

2014. 8. 26.

 

예수님은 낮은 사람들을 사도로 뽑았습니다.

대부분 어부들이었고 낮은 가문 출신이었으며,

학식도 없고 말을 잘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부유하고 아는 게 많고 훌륭한 가문 출신들은 여러 가지 유혹이 많아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 말씀을 따르기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부와 영예,

쾌락의 삶이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천국에 대한 희망이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초기교회의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노예나 하층민이었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로부터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이러한 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코린토 1서 1,26-31)

 

 

요즈음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은 초기 코린토 신도들에 비하면

훨씬 지혜롭고, 유력하고, 강하고, 지식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기준에 따르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계급들이겠지요.

 

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는 ‘속된 기준’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단순히 재산이 많거나 지식이 높아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과 지식을 ‘세상의 기준’으로 사용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오늘의 현실에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의 축적’은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는 하지만

사회에 대한 기여 또한 적지 않아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지혜나 학식도 남에게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부나 지혜나 강한 육체나 모두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명심하여

약하고 덜 가지고 고난 받는 이들과 나누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