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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의 실천’이 열매 맺는 포도 가지

2014. 5.27.

 

 

‘가방끈 길다고 공부 잘 하나?’ 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습니다.

학력은 높은데 학문의 성취도가 현저히 떨어질 때 하는 말입니다.

‘음식점 멋있다고 요리 맛있나?’ 도 비슷한 뜻입니다.

중요한 본질은 외면하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비판이 적용될 것 같습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저는 이 요한복음 구절에서 위 말씀이 요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붓글씨로 전시되는 성경 말씀에도 자주 등장하여 익숙하니까요.

그래서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 말씀 잘 읽고, 기도 잘 하고,

그렇게 ‘머무르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잘 읽어보니 예수님 말씀의 뜻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요한 15,)

 

그냥 ‘머무르기만’ 한다고 다 받아주고, 붙여주시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하느님께서 다 잘라버리십니다.

추수할 때 까지 기다려서 열매를 안 맺으면 쳐 내시는 게 아니라,

열매를 맺을 기미가 안 보이는 가지는 미리 솎아내십니다.

그래서 포도를 맺을 가지가 더욱 잘 자라게 해 주시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강조됩니다.

‘실천’이 없는 신앙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음이요,

열매 안 맺는 가지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실천’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기준은 각자가 정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현실 세계에서 ‘정의’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판단이 안 설 때는 실천을 보류하고 좀 더 생각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의’ 라고 확신하더라도 그 실천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동의’에 그치는 분도 있고, 목숨을 바칠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그 열매의 크기는 ‘농부이신’ 아버지가 판정하시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