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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어둠’에 맞서는 ‘소금’과 ‘빛’

2014. 6. 10.

 

강연을 듣고 나와서 ‘오늘 강연이 무슨 내용이었지?’ 하고

되돌아보면 거의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강연은 요지를 메모하려면 별로 적을 것이 없습니다.

초점이 분산되었거나, 너무 흔한 내용이 거듭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개, 방앗간 갔다 온’ 기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러한 강연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십니다.

여덟가지 행복에 대한 ‘행복선언’에 이어 말씀하십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 5,)

 

여기에서 ‘소금’의 역할은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소독하는 것입니다.

악의에 물들기 쉬운 사람들에게 지혜와 지식과 은총을 부어 주어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고쳐주고 또 다른 잘못을 예방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못 하는 제자들은 ‘쓸모가 없어’ ‘버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소금의 역할은 우리 가톨릭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빛’으로 드러나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라고 분부하십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게 해주고, 상하지 않게 하여 보관시켜줍니다.

‘빛’은 앞을 비추어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소금과 빛이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상처들을 갖고 삽니다.

거기에 소금을 뿌리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남이 안 보는 데서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빛’을 비추면 그들은 즉각 적의를 드러낼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왕따 당하는’ 조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세균’과 ‘어둠’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