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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마라.

2014. 6. 17.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과격한 플래카드를 볼 수 있습니다.

학교 주변에는 ‘유흥업소 허가 결사반대’,

주택가에는 ‘재개발 결사반대’가 있는가 하면

‘경축, 안전진단 불합격’ 즉, 우리 아파트가 곧 무너질 수도 있다고

좋아하는 글귀도 있습니다.

재래시장에는 ‘대형 상가 결사반대’, 공장 부근에는 ‘온실 가스 법안 결사반대’,

등 등 수많은 결사반대가 있습니다.

 

결사반대란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반대함.’ 이라고 사전에 정의돼 있습니다.

쉽게들 결사반대를 외치지만 실제로 자기가 반대하던 일이 집행되어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 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서나 맹세도 그냥 형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정말 그대로 지켜진다고 믿는 일은 드뭅니다.

유행가에 나오는 맹세는 거의가 다 깨지기 위한 약속입니다.

‘햇님 달님을 두고 맹세했던 그대는 지금 어느 누구 품에...’ 가 주류입니다.

결국 맹세를 많이 하면 할수록 믿음을 잃게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약속을 하고서 그걸 다 지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예수님 시대에도 똑같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 5,)

 

예수님께서는 법정에서의 ‘선서’같은 사법적 맹세나

공적인 약속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거나 나쁜 마음에서 습관적으로 내놓는 개인적 맹세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거짓 맹세’란 ‘지킬 수 없는 다짐’, ‘허튼 약속’을 말합니다.

남과의 약속은 물론이거니와, 자신과의 약속은 더욱 무거워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다시 말하면 ‘주님께’ 하는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선언이 얼마나 실천되기 어려우면

‘아예 맹세하지 마라.’고 못 박으셨겠습니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라는 말씀은 결국 자기 분수를 알아서 실천 가능한 다짐만 하라는 뜻입니다.

 

올바른 다짐을 하고 반드시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한 노력과 훈련으로 어느 정도는 이루어질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