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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는 섬기는 사람의 몫

2013. 6. 3.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갑을논쟁’이 큰 이슈로 등장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을’에 대한 ‘갑’의 횡포는 당연시 되어왔으며

약자인 ‘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갑의 횡포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대중화에 따라

약자들이 호소할 공간이 생기고, 이들의 억울함이 공감을 얻고

여론화되면서 힘의 균형이 ‘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주로 생산과 유통에서의 갑을 관계가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사회 곳곳에 고쳐져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융기관들이 대출하면서 꺾기 등을 강요하는 횡포,

스포츠 계에서 스카우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리들,

교수와 조교 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 등,

전 방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시정되지는 않더라도

법 제정 등을 통해서 좋은 방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갑을관계’의 또 다른 문제는 ‘갑’이 아니면서도 ‘갑’인줄 알고 뻐기고,

행패를 부리는 모습입니다.

 

 

42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코 10)

 

 

‘통치자’나 ‘고관’은 자기들이 ‘갑’인줄 알고 군림하고 세도를 부립니다.

정부 관리가 ‘갑’입니까, 그들에게 봉급을 주는 백성이 ‘갑’입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을 통치자와 고관은 물론 백성들도 모르고 삽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는 누가 ‘갑’입니까?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우리들의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진정한 ‘갑’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내가 ‘갑’인지, ‘을’인지를 구별해야합니다.

그래서 ‘갑’이 될 때면 ‘을’을 공정하게 대해 주고,

‘을’이 되면 ‘갑’에게 당당하게 처신하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