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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배우는 지혜를

2013. 8. 5.

 

기원전 208년 중국, 항우(項羽)는 진나라(秦)를 무찌르고 수도 함양(咸陽)을 점령합니다.

참모 한생(韓生)이 ‘이곳에 머물러 천하를 평정하자’고 건의하자 항우는,

“성공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비단옷을 입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며

고향에 돌아감으로서 천하를 잃게 됩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말이 생긴 유래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또 하나의 경우는 벼슬이 떨어지고 권력투쟁에 밀리거나,

은퇴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는 귀향(歸鄕)입니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입장에서 ‘금의환향’은 크게 환영할 일입니다.

마을회관도 지어줄 것이고, 잔치도 자주 벌일 것이므로 얻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향, 낙향하는 이들에게서는 별로 이득 볼 일이 없으므로

심드렁하게 대하는 게 보통입니다.

 

예수님도 고향에 가신 일이 있습니다.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마태 13,)

 

 

사실 예언자는 고향뿐 아니라 어디에서도 존경받기 어렵습니다.

‘남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떡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여주거나, 아픈 이들을 낫게 해 주어야 좋아하지,

회당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것도 명성이 높은 분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던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알려진 분들의 말씀은 쫓아다니며 들으면서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훌륭한 말은 흘려버리지 않는지요.

주위에서 듣는 말들 중에서 ‘들어야할 말’을 가리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습니다.

 

덧붙여서 저는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늘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