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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쉬운 가톨릭 안내 - 019 성호(聖號) Sign of the Cross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여자 배드민튼 단식 결승, 인도네시아의 미아 아우디나를 이기는 순간 네트 밑에 꿇어 앉아 성호를 긋는 방수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5승 19패의 절대적 열세였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승에서도 1대2로 역전패해서,
아쉽게 은메달을 목에 걸게 했던 배드민튼 여제 수지 수산티를 준결승에서 2대0으로 꺾은 뒤의
승리이니,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2010년 2월 26일 요정 김연아는, 뱅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마지막 출정에 앞서
성호를 그었다.
실력으로는 이미 결판이 났고, 다만 평소에 하던 대로 하도록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몸의 기도였다.

이들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이마와 명치끝 부근, 왼쪽 어깨와 바른쪽 어깨 순으로 찍고,
두 손을 합장하는 것을 ‘큰 십자 성호’ 라고 한다.
큰 십자 성호는 5세기에 시작되었고 12세기경 전례에 도입되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바치는 성호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문이다.
십자성호는 바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십자성호는 초기 사도 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교회에서 공적 전례를 거행할 때와
신자들이 사사로이 기도할 때 사용된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식사 전후, 위험과 유혹이 있을 때 긋는다.

십자가는 기원 훨씬 전부터 여러 대륙, 많은 민족 사이에서 종교적 징표나 상징,
또는 장식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인들이 십자가를 처형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로마에서도 기원후 4세기까지 십자가형을 극형으로 사용했다.
로마인들은 주로 노예들이 살인, 강도, 반역이나 반란 같은 죄를 저질렀을 때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래서 십자가형을 '노예 처형 방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서, 십자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느님을 화해시키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는 도구가 된다.
성호는 이러한 십자가를 내 몸에 새기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자가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용인하면서부터이다. 이에 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4세기 초 로마에서는 콘스탄티누스와 막센시우스가 서로 황제가 되려고 결전을 벌였다.
전투 전 날 밤 콘스탄티누스 장군이 환시를 봤는데, 하늘에 큰 십자가 표시가 보이면서
‘이 표지로 그대는 승리하리라'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싸움에 이겨 황제 자리에 올랐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공식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십자가는 무덤을 비롯해 기념비나 동전, 관공서 서류 등 곳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4세기 말 로마제국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이 된 것이다.

성호는 2세기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우선 자신의 축복과,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물건에 강복하였으며, 악령을 몰아내는 뜻으로 십자 표시를 하였다.
당시에는 이마에 엄지손가락으로 작은 십자표를 하였으므로 ‘작은 십자 성호’라고 한다.
4세기 이후에는 이마, 입술, 가슴에 그었는데, 지금도 미사 복음 봉독 전에
이 작은 성호를 한다.
이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며(이마), 입으로 고백하며(입술), 가슴에 새겨 실천한다(가슴)는
의미이다.

어느 십자 성호이든 단지 습관적인 동작이나 신자의 표시라기보다는,
자신의 온몸을 축복한다는 자세로 긋는 것이다.

<馬丁>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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