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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2015. 2. 17.

 

살면서 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주 어려운 일의 하나가 ‘화해(和解)’입니다.

‘화해’란 ‘소원한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일치에 도달하는 것’

이라고 사전에 정의돼 있습니다.

원래의 상태가 잘못되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번 잘못된 사물이 다시 원상복구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부러진 물건을 붙여도 처음처럼은 되지 않습니다.

박힌 못을 빼내도 그 자국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헝클어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화해를 한다고 해서 그 앙금이 아주 없어지기는 힘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

화해가 가능할까요?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하십니다.

 

 

20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2 코린토 5,20―6,1 2)

 

하느님은 죄 없는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화해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려면

우리가 그냥 하느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과의 화해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을 다 치워놓고 기다리십니다.

화해는 오롯이 인간의 몫일뿐입니다.

 

이렇게 쉬운 화해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는 참회한 죄를 다시는 짓지 않아야 하는데

그야말로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서

죄를 짓고, 참회하고, 또 짓고를 반복하게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 화가 나셔서,

다시는 화해를 안 해 주실 게 겁이 나면서도

죄를 끊지 못하는 나약함이 부끄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