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좁고 꼬불꼬불한 길.
언제 보아도 정겹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길이다.
어려서는 술래잡기,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를 했지.
중고생 때 여럿이 와글와글 떠들며 몰켜다니면
아무 것도 아닌 얘기도 다 재밌어지는 그 길들.
이제, 그런 길은 일부러 찾아가기 전에는 없다.
어쩌다 우연히 들어서는 날이면
절로 흥이 나고 여러 가지 옛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잘 한 일 없이 복이 많은 옥우 테니스 선수들은
매주 일요일 추억의 골목길을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치를 누린다.
<경기고 쪽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정문과 후문.
그러나 우리는 캠퍼스 북면 철조망 둘러친 담에
조그맣게 뚫어 놓은 비상문을 애용한다.
그리로 나가면 옛날만 못 해도
향수를 달랠 만큼의 골목길들이 있다.
담 밑에 동서로 벋은 간선 골목이 있고
거기서 여러 개의 남북 골목이 연결된다.
옛날에 현대에서 단지를 조성해 단독주택을 짓고들 사는 데,
돈 많은 이들과 고관들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몰려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되었다.
예쁜 미스 송, 중견의 김 김 부부 등등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이웃을 이루고,
수천억 재산을 가진 IT 업계의 혜성은
있던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 이사 왔다.
왼쪽 첫 집은 전직 고관 댁인데 점심 먹으러 이리 지나가면
세 마리의 개가 적개심에 넘쳐 맹렬히 짖어댄다.
매너 없는 이 녀석들을 찍어 공개해서 개망신을 시키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재빠르게 숨어서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그 앞집은 세금 걷는 데서 높지 않은 벼슬을 하던 분 댁,
박봉을 모아 이런 집을 사셨다면 정말 존경할 만 하다.
후문 바로 아래에 장애우들의 배움터인 정애학교가 있다.
좀 사는 사람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이런 학교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데,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의 경기 옆에 이 학교가 있는 것은 보기에 좋다.
점심은 주로 서쪽 큰 길 건너 한정식집 ‘다복’에서 먹거나
(두당 5,500원. 넉넉히 튀겨 주는 조기를 빼면 5,000원)
건너기 전 왼쪽에 있는 ‘오발탄’에서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곱창구이가 제일 비싼 집이다.
우리는 그걸 먹는 일은 없고 대충 위 사진의 메뉴를 택한다.
연두색은 테니스장 여사장, 오른쪽이 미스 오발탄 김주영.
주영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웨이트레스이다.
빈 반찬 알아서 가득 채워주고, 시키지 않은 메뉴도 슬쩍 놓고 간다.
조맹기 정선희(정홍용 막내 동생) 부부는 점심이 지난 뒤 간식을 싸들고 온다.
오늘은 모처럼 오누이가 한 편이 되어 적군을 크게 무찔렀다.
골목 안에는 의례 감추어진 무엇이 있기 마련.
저 끝, 타워 크레인이 서 있는 집은 1년 넘게 공사가 진행 중인데
아직도 지상에는 아무 구조물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두어 집을 털어서 한 채로 만드는 아주 큰 규모다.
어떤 엄청난 분의 집일까?
사진 찍다가 검은 안경 쓴 사람들에게 휴대폰 빼앗기고,
봉변 당할까봐 멀리서 촬영.
종합지 기자라면 당당히 취재할 텐데
집옥재 기자로는 좀 으스스하다.
테니스장 골목길은 부잣집, 쎈 분 집, 예쁜이들 사는 집들과
서민들의 연립주택, 보통사람들의 단독주택들이 어우러진
사람 사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