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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 이태일 동지와 산행을 같이하기 위해 문수산으로 가려했는데

해암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문수산 산행을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따라서 이번 11월 산행은 '청계산'으로 갑니다.

1. 일시: 2018년 11월 28일(수) 오전 10시

2. 산행지: 청계산

3. 만나는 곳: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회원 여러분의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2018년 11월 22일        옥우산우회장 올림 


◆ 산행지 설명


옥우산우회 2018년 11월 산행은 김포시에서 제일 높은 산, 문수산(해발 376m)으로 갑니다.

조선시대 숙종 때 축성한 문수산성이 있으며,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을 점령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문수산성 안에는 문수사도 있습니다.


문수산 들머리는 지하철 9호선 종점인 개화역에서 버스를 타고,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강화대교 방향으로 직진하면 등산로와 만납니다.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장~전망대~홍예문~문수산정상~북문갈림길 삼거리~북문~산림욕장~

성동검문소(원점회귀)의 코스로 전장 약 6.3km이며 완만하고 주변경관이 수려합니다.

날씨가 맑으면 이북 개성의 송학산을 볼 수 있으며 아주 가까이 북한 땅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병인양요


흥선대원군 1866년 정초부터 천주교 금압령(禁壓令)을 내렸다. 이후 몇 개월 동안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9명을 비롯하여 남종삼(南鍾三)·정의배(丁義培) 등 한국인 천주교도 8천여 명이 학살되었다.

그해 5월 조선을 탈출한
펠릭스 클레르 리델(Félix Clair Ridel) 신부는, 중국 톈진[天津]에 주둔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피에르 로즈(Pierre Roze) 제독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학살사건을 알렸다. 보고를 받은 베이징[北京] 주재 프랑스 대리공사는 청국정부에 공한(公翰)을 보내어 한반도로 진격할 결심을 표명하고, 이후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든 청국정부는 이에 간섭할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청국 총리아문사무(總理衙門事務)의 공한을 통해 프랑스 동태를 알게된 대원군은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과 변경(邊境) 수비를 강화했다.


병인양요 전투사진.jpg

전투


9 18일 리델 신부와 한국인 신도 3명의 안내로 로즈 제독이 인솔한 프랑스군함 3척은 인천 앞바다를 거쳐 양화진(楊花津)을 통과하여, 서울 근교 서강(西江)에까지 이르렀다. 극도로 긴장한 조정에서는, 어영중군(御營中軍) 이용희(李容熙)에게 표하군(標下軍) ·훈국마보군(訓局馬步軍)을 거느려 경인연안을 엄중 경비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프랑스 함대는 9 25일 강류(江流)·연변만 측량하고 중국으로 퇴거하였다.

그러나 10월 로즈 제독은 순양전함(巡洋戰艦) 게리에르를 비롯, 모두 함대 7척과 600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부평부(富平府) 물치도(勿淄島:芍藥島)에 나타났다. 10 14일 이 중 4척 함정과 해병대가 강화부(江華府) 갑곶진(甲串津) 진해문(鎭海門) 부근의 고지를 점거하였다. 프랑스군은 한강수로의 봉쇄를 선언하고, 16일 전군이 강화성을 공격하여 교전 끝에 이를 점령하고, 무기 ·서적 ·양식 등을 약탈하였다.

조선은 이경하(李景夏) ·신헌(申櫶:申觀浩) ·이기조(李基祖) ·이용희 ·한성근(韓聖根) ·양헌수(梁憲洙) 등 무장들에게 서울을 위시하여 양화진 ·통진(通津) ·문수산성(文殊山城) ·정족산성(鼎足山城) 등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9일 프랑스측에게 격문(檄文)을 보내 선교사 처단의 합법성과 프랑스함대의 불법 침범을 들어 퇴거할 것을 통고하였다. 로즈는 회답을 통하여 선교사 학살을 극구 비난하고, 그 책임자를 엄벌할 것과, 전권대신을 파견하여 자기와 조약의 초안을 작성하라고 맞섰다. 10 26일 프랑스군 약 120명은 문수산성을 정찰하려다 미리 잠복, 대기중인 한성근의 소부대에게 27명이 사상되는 등 처음으로 막대한 인명손실을 입었다. 이로부터 민가 ·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으며, 이러한 만행은 황해도 연안(延安)에까지 미쳤다.

11
7일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프랑스 해병 160명은 정족산성을 공략하려다가 잠복하고 있던 500여명의 조선군 사수들에게 일제히 사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간신히 갑곶으로 패주하였다. 정족산성 전투의 참패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결국 로즈 제독은 철수를 결정하였다.


결과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정족산성 수성장(守城將)인 양헌수가 그해 11 9일에 “저들은 죽은 자가 6명이고 아군은 죽은 자는 1명입니다”라고 보고하고, 다시 1111일에는 “6명의 적들이 남문 밖에서 죽은 것을 우리 군사들이 목격하였습니다. 어젯밤 촌민(村民)들이 와서는 저놈들이 행군해가면서 또한 죽은 자가 40여 명이나 되었는데 저놈들이 모두 시체를 묶어서 여러 대의 짐바리에 실어갔다고 했습니다. 저놈들이 죽은 수는 50여 명입니다”라고 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그러나 프랑스 측의 기록에서는 당시 전투에서 3명이 죽고, 3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11
11일 프랑스군은 1개월 동안 점거한 강화성을 철거하면서, 장녕전(長寧殿)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앞서 약탈한 은금괴와 대량의 서적 ·무기 ·보물 등을 가지고 중국으로 떠났다. 이로써 세계정세에 어두운 대원군은 그 기세를 돋우어,
척화비(斥和碑)를 만드는 등 쇄국양이(鎖國攘夷) 정책을 더욱 굳히고, 천주교 박해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구미열강은 이를 계기로 조선을 청국의 종속국가가 아닌 독립한 주권국가로 인식하여, 종래의 한 ·청 관계를 재검토하였다. 프랑스군이 탈취한 많은 서적 ·자료 등은, 뒷날 유럽사람들이 한국 ·동양을 연구하는 데 사용되었다.

                                                                                                   -두산백과에서 발췌-


◆ 사진으로 미리 보는 트레킹 코스

문수산 지리도.jpg.jpg

지하철 9호선 종점인 개화역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성동검문소(지도의 좌하단)에서 하차,

문수산 등산로 들머리 지점에서 등산을 시작합니다.

남문~128고지~홍예문~문수산 정상~문수산성길(북문 삼거리)~북문~남문(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전체 거리 약 6.3km로 우리 걸음이면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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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교(왼쪽), 강화대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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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정상의 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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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정상의 장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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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성의 일부인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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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하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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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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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으로 보이는 북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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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일정 및 전달사항

  1. 일   시 

   2018년 11월 28일(수) 오전 10시 30분 

  2. 만나는 곳

   지하철 9호선 종점 개화역

  3. 헤어지는 곳 

   상 동

  4. 코스 안내 

   문수산/김포(위의 지도 및 설명 참조)                                                              

  5. 거리 및 시간                      

   도보 약 6.3km, 3시간 30분(쉬는 시간 별도)

  6. 점심 및 간식 

   문수산 정상에서 김밥 한 줄로 간식

   하산 후 늦은 점심(장어요리)

  7. 준비물 

   등산복장 및 스틱 지참, 아이젠 지참, 비가 올 경우 우산, 비 옷 준비

   식수 및 약간의 개인 기호 간식

  8. 회  비 

   당일 발생 경비를 참가자 균등 부담 원칙.

   약 30,000원/인 준비


◆ 차기 산행 예고


1. 일시: 2018년 12월 19일(수) 오전 10시

2. 산행지: 청계산

3. 만나는 곳: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개찰구 밖

4. 산행 후 송년모임


                                                                                                             옥우산우회장

                                                                                                             박 인 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