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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김대건 성인이 탄생한 솔뫼성지


  성지 입구 - 01-01.jpg

                                                                <솔뫼성지 정문>

 

    

 

한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기적이고 은혜이며 축복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출생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 가던지 간에...

    

 

김대건 성인은 우리의 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 지어다.

   천주 무시지시(無始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 지어다.

-----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 데 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이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恩)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에 득죄하면 아니 남만 어찌 같으리오

-----”

<김 성인의 마지막 서한 교우들 보아라!’ 중에서>

    

 

김 성인의 탄생은 우리나라 기독교에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분이 출생한 곳이 솔뫼이고,

그래서 이곳이 성지로 재탄생하여 세계인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솔뫼 아레나 - 야외 성당-01.jpg

                                                                <솔뫼 아레나 - 야외 성당>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 위치한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고 하여 솔뫼(松山)라 불린다.

김대건 안드레아 집안 4대와 그 일가가

이곳에서 교우촌을 이루어 살았고

4대가 순교하여 신앙의 못자리가 되었다.

 

      

복자 김진후(金震厚) 비오

(1738년 영조 14 1814년 순조 1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톨릭 대사전에는 1739년생으로 돼 있음.)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로서 충남 면천(沔川) 군수로 재직 중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에게 감화를 받고

50세 때 입교하였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시련을 받기 시작,

45차례 붙잡혀 전주·홍주·공주 등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신앙을 지켰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서는

모진 형벌에 굴복, 배교를 약속하고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에서 돌아온 뒤 배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잡혀 해미감옥에 압송되었는데,

끝내 배교하지 않아 10년이 넘도록 옥중생활을 하였다.

옥중에서도 굳은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주위의 존경을 받다가

1814년 옥사하니, 순교자 중 가장 긴 감옥살이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복원된 생가-01.jpg     프란치스코 교황-01.jpg                            <복원된 생가>                                             <프란치스코 교황>

    

 

복자 김종한(金宗漢 ?~1816.) 안드레아

본명은 한현(漢鉉)으로 김진후의 셋째 아들이자

김대건의 작은 할아버지이다.

솔뫼에서 태어나 친척인 이존창의 전교로 입교하였다.

박해를 피해 경상도 영양의 우련밭(현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으로 가,

17년 동안 숨어 살면서 오직 기도와 덕행을 쌓으며

복음 전파에 헌신하였다.

1815년 붙잡혀 안동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대구로 이송되었다.

20개월의 옥중 생활 동안 그의 형과 교우들에게

굳은 신앙을 당부하는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18161226(118) 참수되어 영광의 순교자가 되었다.

<가톨릭 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17961839)

김진후의 차남 택현(澤鉉)의 아들이자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로

솔뫼에서 출생,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했다.

나 베드로(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고

용인에서 신도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83615세 된 아들 김대건을 모방 신부에게 맡겨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 보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아들을 외국으로 보낸 국사범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형조로 이송된 후 9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9257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5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김대건 성인상-01.jpg    수의로 변장한 김성인-01.jpg

                            <김대건 성인상>                                     <수의로 변장한 김대건>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김대건은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솔뫼에서 태어나 용인 골배마실에서 자랐다.

1836년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에서 유학하고

1845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귀국 후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떠났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9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치명하였다.

이로서 김 성인 집안은 32년 동안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다.

 

많은 성인 복자 증거자를 배출한 김대건 집안

가문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김진후의 장남 종현(淙鉉)이었다.

그는 이존창의 권면으로 입교한 후 형제와 조카들을 인도하였고,

부친 김진후도 입교시켰다.

김대건 성인의 조부 택현이 이존창의 딸 이 멜라니아와 혼인하여

가문의 천주 신앙은 더욱 강해지고 활기를 띠었다.

    

십자가의 길-01-01.jpg    생가터 -001-02.jpg

                         <십자가의 길>                                                        <생가 터>


 

성녀 김제신 데레사(17961840)

김 데레사는 김종한의 딸로 솔뫼 출생, 김대건의 당고모이다.

17세 때 손연욱 요셉과 혼인, 1824년 남편이 해미에서 순교하자

가난하게 혼자 살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유방제 신부와 범 라우렌시오 주교의 살림을 돌보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정하상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184019일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 가문의 순교자는 모두 14,

증거자가 11명에 이른다.

    

솔뫼 성당 (2)-01.jpg    솔뫼 성당 (4)-성인 유해-01.jpg     

                                    <성당>                                                               <성인 유해>

 

 

한국의 베들레헴솔뫼 성지

김대건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솔뫼성지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톨릭 대전교구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가 복원을 결의, 20049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하였고

200510월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20148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3회 한국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다.

2017814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알려주신

성모 신심을 기억하고 온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경당을 봉헌하였다.



  기념관과 성당-02.jpg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 (3)-02.jpg  

                             <기념관과 성당>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