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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82년 전에 세운 고딕 건물공주 중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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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중동성당 - 공주시 홈 페이지에서>

 

 

충남 공주의 성지 중동성당(中洞 공주시 성당길 6. 중동 31-2)

합덕 성당(충남 당진군 합덕읍)과 공세리성당(충남 아산시 인주면)에서 분리되어

189758일 성모 성탄을 주보로 설립된 공주본당이 그 전신이다.

 

189741일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기낭 베드로(P. Guinand, 陳晋安, 1872-1944) 신부가 임명되었고,

기낭 신부는 1898년 환옥(또는 향옥 - 죄수를 가두고 처형했던 둥근 감옥) 터를 매입하여

12칸 기와성당과 사제관을 지었다.

공주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성당이었다.

공주본당은 1982년 공주교동성당(校洞)이 분리되면서

공주중동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21년에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마르코(崔宗哲, 최말구 1890-1945) 신부는

1936년 새로운 성당 건물을 짓기로 작정하고

1892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집 성당인

서울의 약현성당(藥峴 중구 중림동)을 모델로 직접 설계하여

중국인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벽돌을 구워

정면 중앙에 종탑을 갖춘 벽돌조의 고딕식 건물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완공, 1937512일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중동성당-02-01.jpg


 

 현관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고,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끝이 뾰쪽한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넓은 회중석(會衆席)을 두고

그 양쪽에 복도를 둔 삼랑식(三廊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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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

 

 

성당과 함께 충남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된 사제관은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로 좌우 대칭형을 이루고 있으며,

조적조 건물이 지니는 조형성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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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

 

 

성당 옆에는 최종철 신부의 묘와 최종수 요한의 순교비가 있다.

최 신부는 1945년 선종할 때까지 사목하다가 이곳에 묻혔다.

그의 유해는 2003년 대전 가톨릭대학교 내의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고,

현재의 묘는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을 안치하여

2008819일 복원한 것이다.

묘지 뒤에는 신부를 기리기 위해 1975년 공주 지역 성직자와

신자들의 정성으로 세운 돌병풍 빗돌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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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철 신부 묘소와 최종수 요한 순교비>


 

최종수(1881-1950) 요한은 최 신부의 형님으로

육이오 전쟁 때 공주를 점령한 인민군이

성당에 들어와 마구 총질을 하며 성물을 훼손하고

성당을 더럽히는 것에 분개해 항의하다가

720일 성당 마당에서 인민군의 총탄에 순교했다.

공주중동성당 신자들은 최 형제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주님을 향한 순교적 삶을 본받고 후대에 전하고자

2010년 순교자 성월에 최 신부 묘 바로 옆에 순교현양비를 세웠다.

<대전교구 중동성당 홈페이지>

      

중동성당과 건너편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사이 길이 국고개이다.

고려 때 이 복이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병석의 어머니를 위하여 겨울에 금강 물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모친을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이 복이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국을 얻어 품에 안고 서둘러 고개를 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국을 쏟아서 국고개라고 한다.

<공주시 홈페이지>

천오백년 고도에 있을 법한 전설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