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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수준을 넘는 부(富)는 자동적으로 넘치게 하면.

2015. 7. 28.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 끼 굶으면 군자가 없다.’ 라고도 말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생존’이고,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어떠한 나쁜 짓도 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일부 정직한 사람은 굶어죽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노동을 하다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음식이 떨어져 배를 곯게 되자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3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탈출기 16,)

 

기껏 얻은 자유는 다 팽개치고 노예의 빵을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탄이 밥으로 유혹하면, 하느님을 외면하고

당장 눈앞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우상을 숭배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주어

12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빵)을 배불리 먹게’합니다

(탈출기 16,)

 

밥을 배불리 먹은 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느님의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배부른 뒤에는 배고플 때의 생각과 처지를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좋은 집을 가져야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즐거운 일을 찾다 보면 자연히 옳지 못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 24)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또 예수님은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라고도 말씀하십니다. (루카 6,25)

 

우리가 속세를 살아가면서 배고픈 상태가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배부른 사람’ 즉 ‘부자’가 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면 약간 배고픈 정도만 되면 좋겠고

부자들은 술을 7할 이상 부으면 저절로 새어 나가는 계영배(戒盈杯)처럼

배부름이 스스로 정한 수준을 넘으면 자동적으로 남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