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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인간관계를 잘 다져야.

2015. 8. 11.

 

나관중(羅貫中)의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위왕(魏王) 조조(曺操155-220)의 후계를 둘러싼 형제간의 싸움 이야기가 나옵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장남 조비(曹丕)가 왕위에 오르자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자였던 동생 조식(曺植 192-232)을 죽이려 합니다.

별의별 트집을 다 잡다가 안 되자 ‘네가 그렇게 글을 잘 쓴다니

일곱 걸음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면 살려주마.

제목은 형제로되, 형제란 단어는 쓰면 안 된다.’고 선언합니다.

 

조식이 누구입니까?

중국 역사상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문장가 아닙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시 한 수를 읊어냅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萁)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相煎何太急)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의 탄생입니다.

 

 

세상일을 보면 상하관계의 갈등도 적지 않지만

조씨네처럼 형제, 즉 수평적관계에서의 죽고살기식 싸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해서

상하관계에서는 관용이 있지만 수평관계에서는 악착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주인이 채무자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자

26 종이 엎드려 절하며‘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이 악한 종아,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마태오 18,)

 

 

예수님께서 예를 드신 윗글에 나오는 임금 또는 주인은

하늘나라에 계신 분인 것 같습니다.

속세의 어느 ‘주인’이 ‘종’의 빚을 탕감해 줍니까?

 

그러나 그 주인은 종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정작 종에게 더욱 심하게 닦달을 하는 자는 역시 종입니다.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고, 동료가 동료를 봐 주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모질게 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아랫사람에게 잘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까우면서도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동료 간에, 형제간에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성숙한 자세이겠지요.

 

과연 자신은 수평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항상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