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197 추천 수 0 댓글 2

 

 

김대건 성인의 시신을 몰래 빼내 안장한 미리내 성지

    

미리내성지-01-01.jpg         

            <미리내 성지 - 왼편 건물이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오른 쪽이성모당’>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사람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와 그의 어머니 고 우르슬라,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한 이민식(李敏植) 빈첸시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6명의 순교자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69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되었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김 신부의 치명 소식을 들은 미리내 교우 최 형 베드로, 박상호 바오로 등은

미리내 북쪽 거문정이의 기골 장대한 17세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에게

시신을 몰래 파내 모셔오도록 하였다.

 

기회를 엿보던 이민식은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1026일 유체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수의에 곱게 싼 머리는 가슴에 안고, 동체는 걸빵하여 짊어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검은 돌(黑石洞)을 지나 동작리(鋼雀洞) 뒷산을 타고 남태령을 넘어

청계산 골짜기에 이르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유체를 다래 넝쿨에 숨겼다가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하우고개를 돌아 묘론이 고개, 너덜이(板橋)를 거쳐 태재(泰峴)에 이르니

용인 땅과 가까운 능골 앞산이었다.

끊임없이 묵주 기도를 바치며 밤을 틈타 큰길을 버리고 참바대 고개를 넘어

태화산 기슭의 퉁점(銅店), 드렝이 고개를 거쳐 마침내 은이 마을에 도착하였다.

은이 마을에서 미리내까지 신덕, 망덕, 애덕의 험한 고개를 넘어

닷새만인 1030일 김 신부를 미리내에 있는 이민식의 선산에 모실 수 있었다.

<미리내성지 홈 페이지 등>

 

                          김대건 성인 시신을 수습하는 이민식-02-조창원 바오로-미리내 뒷산에 도착, 감사기도를 올리는 이민식-01.jpg

                          <애덕고개에서 감사 기도 드리는 이민식.

                        소록도병원장을 역임한 조창원 바오로 그림.>

 

이민식의 묘비에는 새남터에서 미리내까지 7일이 걸렸다고 쓰여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증언도 있다.

김 프란치스코 : 상여에 실어 미리내에 묻었다.

박 베드로       : 임시로 문배부리(지금의 용산구청 자리)에 묻었다가 미리내로 옮겼다.

서 야고보       : 새남터에서 조금 떨어진 왜재에 매장했다가

                      다음 날 왜고개 (현 용산 국군중앙성당)로 옮겨 매장하고 장례를 치렀다.

김 신부 유해 발굴과 이장 기록 보고서 : 1846930일 교우 14명이 미리내로 옮기고,

                      1026일에 안장했다.

이민식의 증손자 이순교 : 이민식을 비롯 세 사람이 옮겼다.

<한국순교자현양회, ‘순교자 증언록’>

 

이민식은 그 후 자신의 집을 공소로 만들고, 종산 일부를 교구에 기증하고

자신은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했으나 중도 포기하고 귀국하여

종현성당 두세 정 신부의 복사로 교회사업에 헌신했다.

종손인 계창(啓昌)을 양자로 삼아 용인군 이동면 묵리 검은정이에 살다가

192112992세로 선종, 1928년 여름 김 신부의 곁으로 이장되었다.

<‘묵리(墨里), 거문정이 또는 검은정이는 이 지역에서 검은 점토가 출토된 데서 유래.>

    

                      고 우르술라 묘-01-01.jpg

                                                             <高 우르술라 묘>

 

김대건이 7세 되던 1827년 일가는 박해를 피해 골배마을로 옮겨와 살았다.

김대건은 15세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신부가 되어,

10년 만에 돌아와 며칠간 어머니를 만나고는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아들이 치명한 지 18년이 지난 1864517,

김 신부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남편 김제준 이냐시오(金濟俊 1796~1839, 1984년 성인위에 오름)

맏아들 신부가 다 순교하고,

작은 아들 란식 프란치스코 가족과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다시피 한, 실로 눈물겨운 생애였다.

이민식은 고 우르술라도 김대건 신부의 묘소 뒤편에 모셔

생전에 함께 있지 못한 모자간의 한을 위로하였다.

김대건 성인의 묘소 앞에는 고 우르술라가 김대건 안드레아를 안고 있는,

순교자의 모후 상이 세워졌는데, 이를 ‘한국의 피에타 상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의 피에타, 순교자의 모후.jpg

                                                <순교자의 모후 상>

 

천주교 조선 교구 제3대 주교 페레올(Jean Joseph Jena Baptiste Ferréol 1808~1853)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40년 마카오에 도착하여

() 해 기해사옥(己亥邪獄) 조선에서 순직한

2대 주교 앵베르(Imbert)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1845년 상해에서 김대건을 신부로 임명하고

그 해 9월 김대건의 안내로 다브뤼(Daveluy) 신부와 함께

금강 어구 강경(江景) 연안에 몰래 상륙했다.

서울에 잠입하여 전도에 힘쓰던 중 김대건이 순교할 때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그 뒤 최양업(崔良業) 신부와 더불어 천주교 기반을 닦았으나

건강이 좋지 못하여 병사했다.

거룩한 순교자의 곁에 있고 싶다.’는 주교의 유언을 따라

김대건 성인 묘소의 옆자리에 안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당과 김대건 성인 묘, 오른쪽-01.jpg

                                          <경당과 김대건 성인 묘소-오른 쪽>

 

미리내는 순수한 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인데,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와 기해박해(1839)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미리내라고 붙였다.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시성 작업이 추진되자,

1901521일 뮈텔(Mutel, 閔德孝 아우구스티노 1854~1933) 주교의 지시에 의해

김대건 신부의 무덤을 발굴, 유해를 523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치하였고,

1017일 이를 다시 신학교 성당으로 옮겼다.

196075일에 그 유해가 서울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대학교로 모셔졌고

미리내에는 종아리뼈와 하악골 등이 남아있다.

본래 무덤이 있던 자리에는 1928년에 김대건 신부의 경당이 건립되었다.

    

                               요셉성당-01-01.jpg

                                                   <성 요셉 성당>

    

 

미리내의 성역화 작업은 1972년부터 시작되었다.

미리내 성지 초입 우측 편에는 초대 주임 강도영 마르코 신부와 본당신자들에 의해

1906년에 건립된 성 요셉 성당이 있다.

이 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하악골(아래 턱 뼈)이 안치돼 있다.

 

성지 중앙에는 1991년 봉헌된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성모당이 있다.

시성 기념성당 제대에는 김 성인의 종아리뼈를 안치했다.

    

                                       백삼위성당-02-01.jpg

                             <103위 성당 - 제단 아래쪽 빨간 불 밑이 종아리뼈>

 

  • 구달 2017.12.29 12:23
    오래전 언젠가 어머니께서 미리내 이야기를 얼뜻 해주신 것 같은데
    이제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니 참 옛말대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번 시 낭송을 위하여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드리려 시도하였으나
    동창회 명부에 있는 yahoo.co.kr 메일구좌에서 접수를 거부한다 하여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 마정 2017.12.31 07:05
    졸문을 읽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시 낭송은, 홍국선의 부인 남정임여사께서, 고운 목소리로 아주 잘 해 주셨습니다. 야후는 한국에서 철수했으므로 서비스가 안 됩니다. hanmartino@hanmail.net 이 제가 쓰는 주소입니다. 새해, 두 분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