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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대건 소년의 정신과 육체를 길러낸 골배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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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배마실 성지>

 

골배마실은 눈이 하얗게 덮인 골짜기에 엎드려 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 순백의 마을이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바로 위를 지나가는 골프장의 페어웨이는 공 치는 사람들이 없어 고요하고

앞 능선에서는 스키어들이 신나게 활강하련만

소음은 위로만 올라가는지 성지의 적요(寂寥)를 깨지 않는다.

 

성인은 가끔 이곳을 찾아 둘러보실까?

당신이 뛰놀던 풀밭에서 후손들이 작대기로 공을 때리고

지팡이를 들고 눈밭을 미끄러져 내리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볼까, 놀라움으로 당황하실까?

말 그대로 상전벽해 (桑田碧海)의 감회에 잠길 것 같다.

60여년 만에 찾아본 나의 생가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얘기해 주시던, 좁은 길가의 2나가야’(長屋)

당연히 사라져버리고,

식당 쇼핑센터 극장 노래방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큰길에

간판은 모두 한글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야트막한 야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해란강은

, 참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났구나하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지...

모습이 변하지 않은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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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성인상>

    

 

1821년 충남 당진 솔뫼마을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1827년 천주교 박해<정해박해 丁亥迫害>를 피해 솔가 이주한

조부 김택현을 따라 골배마실(寒德洞)로 들어왔다.

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

양지파인리조트 골프장 한 가운데이다.

    

 

1836년 초,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가 입국하자

김대건의 부친 김제준(金濟俊)

서울의 정하상(丁夏祥) 집에 거처하던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모방 신부는 부활절(45)을 지내고,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 공소 순방에 나섰는데,

용인 골배마실에 이웃한 은이공소에서

열심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 김대건을 만났다.

이 때 김대건이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가톨릭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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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 터 기념비>

    

 

김대건은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711일 상경,

이미 공부를 시작한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와 함께 한문과 라틴어를 배웠고,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로 유학을 떠났다.

소년 김대건이 골배마실에 산 기간은 8,

유소년의 꿈과 육체가 영그는 자양(滋養)을 흡수한 황금기였다.

 

1845817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831일 상해를 출항,

온갖 고생 끝에 1012일 강경(江景) 부근 황산포(黃山浦)에 상륙했다.

 

서울로 올라온 김 신부는 서울과 그 인근,

특히 용인 지방을 중심으로 교우들을 방문하고 성사를 집전했다.

김 신부는 10년 만에 어머니 고()우르술라를 만나

부활절(1846412)을 함께 지낸 뒤 다음날 서울로 돌아갔다.

부친은 이미 기해년(1839) 박해로 순교하였고,

모자간의 만남도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6916일 군문효수되었다.

 

    성지 표지석.jpg

                                         <성지 표지석. 집 터 땅 속에서 발굴한 돌이다.>

    

 

첩첩산중이라 뱀, 전갈 등이 많이 나오는 뱀마을,

또는 배마실(현 골프장 정문 앞 양지성당 소재지)로 부르던 동네의

산골짜기 안쪽에 있어서 이곳이 골배마실로 불린다.

 

김대건 성인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전해져오다가

1961년 양지 본당 정원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됐으며

1997년 새롭게 단장됐다.

성인의 집터와 고욤나무를 보존하고

석상, 제대, 초가집, 어머니 고우르술라를 새긴 부조를 세웠다.

<은이성지 홈페이지>

 

그러나 이 성지는 골프장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므로

확장 개발하거나, 큰 행사를 치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다.

 

   

성지 출입문-01-02.jpg             출입문-02-02.jpg

                <성지 출입문>                            <잠긴 문을 열려면 은이성지에 전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