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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잊혀진 순교자를 기리는 일만위 현양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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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 성당>

 

어떠한 종교라도 맹아기(萌芽期)에는 반드시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따른다.

기독교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파노에 이어서 베드로 바오로 큰 야고보 작은 야고보

마태오 시몬 요한 등 사도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 대부분이 순교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선교 차 내한한 프랑스 신부들과,

김대건 신부와 여러 선각자들이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4대 박해 등 교난을 거치면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그러나 과연 생명과 믿음을 바꾼 사람들이 정확히, 또는 비슷하게라도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대충 이 정도 숫자는 되지 않을까 추산하고,

사료를 자세히 검토 연구하는 단계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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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순교자 -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

 

 

조선시대에는 네 차례 큰 교난(敎難)이 있었다.

1801년의 신유교난(辛酉敎難) 에서는 약 1백 명이 처형되었다.

<가톨릭대사전>

 

현석문 까를로(玄錫文)가 쓴 기해일기에 따르면,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에서 참수된 자가 54,

교수형 장형으로 죽은 자, 병사한 자가 60여명이었다고 한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1846년 헌종 12년에는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병오박해(丙午迫害)가 일어났다.

순교자는 김대건 현석문 등 9명이었다.

페레올 주교는 이들 9명의 순교사실을 기해일기에 첨가하여

기해 병오 순교자전을 프랑스어로 편집하고,

최양업 신부가 라틴어로 옮겨 로마에 보냄으로써, 기록으로 남겨졌다.

1866(고종 3) 정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교령(敎令)이 포고되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된 것을 필두로

불과 수개월 동안에 천주교 신도 8천여 명이 처형되었다.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시작된 것이다.

산속으로 피신하여 쫓겨 다니다가 병으로 죽고,

굶주림에 쓰러지는 부녀자와 어린이가 부지기수였으며,

신도가 아닌 분들이 박해당한 예도 허다하였다.

이어서,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신미양요 등을 거치면서

박해는 더욱 치열해 지다가, 1873년 대원군의 실각으로 종식되었다.

이 기간에 조선 교회는 근거를 잃어 처참하게 무너졌고,

처형된 순교자는 8천 명에서 2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 백과>

 

천주교가 흥했던 내포지방의 경우, 진영이 있던 해미에서는

박해 기간 동안에 수많은 신도들이 처형되었다.

1799년에 이보현과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고,

1814년에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비오)10년 옥고 후 옥사하였으며,

1815년에서 1827년 에는 손여옥 등의 신자들이 집단으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866(병인) 이후 몇 년 간 순교자가 1천여 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790년대부터 희생된 순교자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수십 명 뿐이니

확인되지 않은 순교자는 3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해미성지 홈페이지>

 

여러 기록과 정황을 미루어 추산할 때

우리나라의 잊혀진 순교자들은 2만 명 ~ 3만 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01-01.jpg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 광장>

 

 

강화도에 있는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一萬位 殉敎者 顯揚)’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비고개로 741번길 107 - 고천리 1486)

이러한 이름 잃은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성지이다.

 

동산으로 올라가면서 순교자의 길, 순교자 현양당, 성모당,

무명 순교자 현양탑이 건립돼 있고,

해미성지의 호야나무, 물고기 모양 제대 돌, 묵주 연못,

다락골의 줄 무덤, 옹기, 배론 성지의 토굴 등

전국 여러 순교 성지의 상징물들이 조성된 것을 볼 수 있다.

김종성 신부가 4년 동안 포크레인을 직접 조작해 가면서

하나하나 완성한 땀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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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길>

    

 

성지 성당 건물에 잇대어 성 남종삼 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남종삼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남 성인의 유해는 증손녀인 남형우 요한 수녀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져

고손자인 남기윤 분도가 아들 남재현 디모테오 신부(현 가톨릭 관동대학교 부교수)

사제 서품 기념으로 2004831일 인천교구에 기증했다.

 

    

성 남종삼 기념관-01.jpg         남종삼 성인 유해-01-01.jpg

          <성 남종삼 기념관>                                  <남 성인 유해>

 

 

3일 째인 921140, 방부처리를 위해 70% 알콜에 담그는 중

40여분이 경과하자 유해에서 피가 우러나오기 시작했고,

담배연기처럼 퍼져나갔다.

 

186637일 순교하신 후 150여년이 지난 유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믿기지 않는 이 기적은

당시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를 비롯한

교구청 관계자들이 직접 목격하였다.

이 때의 피 섞인 알콜은 이곳에 전시돼 있다.

<기념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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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현양탑>


 

일만위 동산은 삶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누구나 찾아와 기도하고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성지라는 뜻이란다.

 

아울러 잊혀진 분들의 신상(身上)

그 분들의 삶, 순교역사가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함께 빌면 좋겠다.